마켓인사이트 3월 27일 오후 1시 50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한 직원은 이번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삿돈으로 30만원어치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했다. 이름난 ‘주총꾼’이 주총장 방문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직원은 “몇 년 전 주총꾼의 금품 요구를 거절했다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주총장이 난장판이 됐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에 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총장 돌며 상품권·현금 뜯어내…대목 맞은 주총꾼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제도)이 폐지되고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원칙)가 확산되며 상장사들이 주총 준비에 어려움을 겪자 이를 틈 타 주총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 2216개사 가운데 71.6%인 1588개사가 이번주 정기 주총을 열었거나 열 예정이다. 주총꾼한테 이번주는 ‘극성수기’다. 주총꾼들은 하루 한두 곳의 주총 현장을 돌면서 20만~30만원가량의 백화점 상품권과 현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주주 권리행사와 관련해 재산상 이익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상법(467조의2)에 어긋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상장사 직원들의 설명이다. 상장사 관계자는 “요구를 거절하면 대표이사 등을 집중 공격하고 의사 진행을 방해한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상장사는 주총꾼 10명가량의 명단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60~70대인 최모, 박모, 양모 씨 등은 이름난 주총꾼이다. 주총꾼은 수십개 상장사 주식 1~10주를 사들여 주총을 대비한다. 이들은 담당하는 상장사를 서로 나눠 ‘장사 영역’이 겹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주로 경영권 분쟁을 겪는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이들의 표적이다.

의결권 위임 대행사도 ‘주총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전국 소액주주의 의결권 위임장을 대신 받아주는 의결권 모집 대행사들은 올해 정기 주총에서만 총 3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의결권 모집 대행사인 팀스는 이번 정기 주총에서 대한항공, 한진칼, 포스코엠텍을 비롯해 10여 개사의 의결권 모집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리앤제이마커드아시아(AJ렌터카 중앙리빙테크 등), 씨씨케이(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셀트리온제약 등), 로코모티브(한솔홀딩스 SK증권 등), 마인그룹(신성이엔지 케이티스 등) 등도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의결권 모집 업무에 한창이다. 이들은 건당 3000만~1억5000만원가량의 비용을 요구한다.

일부 의결권 대행사는 ‘바람잡이’ 서비스도 제공한다. 안건에 찬성하는 의견을 발표하는 바람잡이를 주총장에 보내 원활한 진행을 돕는다. 상장사 관계자는 “주총에서 우호 여론을 형성하고 의장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람잡이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