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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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이 '운명의 한 주'를 맞고 있다. 오는 27일 열릴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조 회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인해 국내외 의결권자문기관은 재선임을 반대할 것으로 권고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조 회장의 연임은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6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을 찬성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날 오후 5시부터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 주총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다. 위원회는 전날 회의를 개최했지만, 반대표를 던지는 것에 대해선 4대4로 의견이 팽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9명으로 구성돼 있고, 한 명이 불참했다.

조 회장은 지난 17일자로 대한항공 사내이사 임기를 완료했다. 조 회장 일가를 비롯한 우호 지분은 33.35%, 우리사주조합은 2.14%다. 대한항공 정관상 이사 연임을 위해선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이상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조 회장은 이미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 표는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주총 참석주주의 3분의2 이상 표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통상 주총 참석률이 70~80%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46~53%의 의결권이 찬성해야 조 이사의 연임을 확정할 수 있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조 회장의 연임안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도 반대하면 이미 조양호 회장 연임에 반대를 표명한 소액주주에게도 힘이 실리게 된다. 현재 대한항공의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 비중은 56%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소액주주의 위임장을 상당수 확보해 연임안 통과를 저지할 계획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참여연대가 진행한 소액주주 운동 중에서는 가장 큰 지분이 모였다고 보면 된다"며 "현재도 퀵서비스를 통해 위임장이 속속 들어오고 있어 현재는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대한항공 정기주총이 열리는 오는 27일 오전 7시30분부터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빌딩 앞에서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조양호 이사 연임 반대 의결권행사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의사를 표명한 소액주주 지분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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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와 국내 서스틴베스트 및 좋은기업지배연구소 등도 조 이사의 재선임에 반대를 권고했다. 조 회장이 위법 혐의가 있는 만큼 기업에도 부정적인 여파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조 회장은 274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03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 등을 구입하면서 부당한 중개 수수료 196억원을 챙겼다. 납품 과정에 일가가 소유한 중개업체 3곳을 끼워넣어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다.

이외에도 조현아·원태·현민 3자녀가 소유한 계열사 주식을 정석기업이 비싸게 사도록 해 41억원 상당 손해를 가한 혐의, 모친 김 모씨 등 3명을 정석기업 임직원으로 올려 9년간 가공급여 20억원 지급 혐의,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해 대한항공이 변호사 비용 17억원을 대신 납부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위장 계열사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공정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을 당한 바 있으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8개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사익편취 이력 및 불법행위에 따른 검찰기소를 이유로 반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또 일부 외국 주주도 반대의사를 내놓았다. 해외 연기금 중 캐나다연기금투자위원회(CPPIB),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투자공사(BCI), 플로리다연금(SBA Florida)도 조 회장 연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국민연금이 찬성하거나 기권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그렇게 되면 조 회장 연임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주총 전 사전에 공개되는 의결권 행사 방향이 다른 소액주주의 표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승부처는 외국인 주주의 표심이 될 전망이다. 현재 DFA(1.52%) 뱅가드(1.32%) 블랙록(1.29%) 골드만삭스(0.66%) 등 외국인 투자자는 대한항공 지분 24.77%를 보유하고 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