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파헤친 특수통 문무일…검정고시 출신 이재명
사법연수원 18기엔 ‘진국(진실한 사람)’들이 많다고 법조계는 입을 모은다. 김재형·민유숙 대법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 문무일 검찰총장 등 법원과 검찰의 ‘정점’에 오른 이들은 연수생 시절부터 출중한 실력에 겸손한 성품 등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판·검사 임관 후 10년 넘게 공직을 지킨 비율도 다른 기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다. 구남수 울산지방법원장·권기훈 서울북부지방법원장·양현주 인천지방법원장·이창한 제주지방법원장·최복규 인천가정법원장 등 현직 법원장만 다섯 명이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과 허부열 법원도서관장도 동기다. 이재명 경기지사,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송기헌·정성호·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현역 정치인도 다수다.

18기는 유난히 끈끈한 기수기도 하다. 매달 스무 명이 넘는 동기들이 골프모임을 가진 지 벌써 25년째다. 다른 기수에선 찾기 드문 문화다. 대법관이나 국회의원 등 관운이 트인 동기가 나올 때마다 여는 축하모임 출석률도 높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민 대법관(83학번)과 문병호 전 국회의원(79학번)은 연수원 시절 이름순으로 옆자리에 앉은 것이 인연이 돼 부부의 연을 맺었다.

문무일 총장-이재명 지사 ‘기모임’

18기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1987년 연수원에 입소했다. 당시 공무원 신분으로 몰래 시위에 나갔던 연수생도 적잖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내부에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이들을 중심으로 ‘기모임’이란 비공개 동아리가 구성됐다. 이재명 지사를 비롯해 문병호·최원식·정성호 등 전현직 정치인들이 이 동아리 출신이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속했다. 이들은 노동법학회를 만들고 무료법률상담 활동에 나섰다. 이듬해 노태우 정부에서 당시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하자 반대 성명서 작성을 주도했다가 연수원에서 잘릴 뻔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지사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장학금을 받고 중앙대 법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 수료 후 경기 성남에서 개업해 시민운동에 몰두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성남시장을 두 번 지내고 지난해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이 지사 외에도 문병호·최원식 전 의원은 인천 부평, 정성호 의원은 경기 의정부, 진봉헌 변호사는 전북 전주에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기모임 핵심 멤버 대부분이 연수원 수료 직후 재야로 진출한 것과 달리 문 총장이 검사를 지망하자 당시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1992년 대구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문 총장은 바로 다음 부임지인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지존파 사건’을 수사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단순 추락사로 보였던 변사체에서 살해 흔적을 발견한 문 총장의 꼼꼼한 수사 기법은 지금까지도 검찰 내부에서 ‘수사의 교본’으로 통한다. 이후 서울지검 특수부로 발령받은 그는 굵직한 사건들을 수사하며 ‘특수통’으로 승승장구했다. 이번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 검찰개혁과 과거사 청산 등을 지휘 중이다. 지난해 11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검찰의 인권 침해에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기도 했다.

문 총장 외에 검사복을 입은 18기 중엔 사연 있는 인물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이석수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다. ‘공안통’으로 박근혜 정부 초대 특별감찰관에 임명된 그는 연수원 한 기수 후배인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사퇴했다. 이번 정부에서 대통령 측근이 주로 온다는 국정원 기조실장에 ‘깜짝’ 임명됐다.

‘김영란법 기소 1호’란 불명예를 안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도 18기다. 그가 후배 검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돈봉투를 나눠줬다는 이른바 ‘돈봉투 만찬’이 세간에 알려지자 청와대가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감찰 결과 이 전 검사장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지고 면직당했다. 면직 보름 만에 갑작스러운 모친상까지 겪었다. 500여 일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고, 이후 법무부를 상대로 면직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에서도 승소했으나 복직 하루 만에 스스로 사표를 냈다.

‘소년급제’한 서울법대 83학번들

법복을 입은 동기 중엔 ‘서울대 법대 83학번’의 약진이 돋보인다. 김재형·민유숙 대법관 등은 대학 4학년 재학 중 소년급제로 사시에 합격한 수재들이다. 김 대법관은 임관 후 3년 만에 판사를 그만두고 모교인 서울대 강단에 섰다. 자타가 공인하는 민법 전문가로 통합도산법 제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국정농단’ 최순실 씨 사건의 상고심 주심이다.

민 대법관은 여성 최초 영장전담판사란 기록을 지녔다. 1983년도 대입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34점으로 여자 수석이었다. 당시 전체 수석은 18기 동기인 홍승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다. 홍 부장판사는 연수원 성적도 수석이다. 동기들 사이에선 원래 홍 부장판사가 대법관 1순위로 거론됐다고 한다. 그러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지난해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고초를 겪었다.

얼마 전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도 83학번이다. 그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임관 후 줄곧 부산·경남 지역에서 근무한 지역 법관으로 재판 관련 일화가 많다. 2007년 자살하기 위해 여관방에 불을 질렀다가 기소된 30대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한 뒤 “피고가 외친 자살이 우리에겐 ‘살자’로 들린다”며 “자살이 살자가 되는 것처럼, 때로는 죽으려고 하는 이유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에게 판결을 내리며 책을 선물한 것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재야에선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가 대법관 후보군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 변호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나와 주주소송 전문 부티크 로펌인 한누리를 세웠다. 대우전자 분식회계 소송 등 국내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하며 성과를 거뒀다. 제28회 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한이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 변호사와 한 변호사도 서울대 법대 83학번이다.

정우영 광장 대표변호사는 해운과 선박금융, 항공기금융 도산 등에 대해서만 25년이상 자문해온 이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임성우 광장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제기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고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