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고장났다"는 경제학자들
“자본주의가 고장났다”는 평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대중적인 기반은 예전보다 상당히 약해졌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도가 계속 높아지고 사회주의자임을 선언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같은 정치인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원론적인 경제 원칙만 되뇌며 대중을 꾸짖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 지금껏 세계의 성장을 이끌어온 자본주의에 고장난 곳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자본주의를 지지하지만 그걸 좀 고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말 출간한 《제3의 기둥: 시장과 국가는 어떻게 공동체를 소외시켰나》에서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를 리바이어던(국가)의 실패나 비히모스(시장)의 실패로 규정할 수 없다”며 그것은 ‘공동체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라잔 교수는 1·2차 세계대전 후 복구를 위해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기술이 발전하던 좋은 시절이 끝나고 성장 속도가 늦춰지기 시작한 1970년대 문제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엘리트들은 유럽연합(EU)으로의 통합을 추진하는 데 정신이 팔려 평범한 사람이 뒤처지는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등장한 ‘슈퍼스타’ 기업들과 주주이익을 우선하는 기업 정책도 대중의 소외와 부의 쏠림현상을 가속화했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능력주의’의 부작용도 나타났다. 돈을 많이 받는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많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좋은 교육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도시의 고소득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에 비해 지방의 저소득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고소득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훨씬 줄어든다. 기회의 평등이 체감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폴 콜리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작년에 내놓은 《자본주의의 미래》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능력주의로 인한 대도시로의 자원 집중과 세대 간 대물림, 주주만을 위하는 기업 정책 등이 불만을 누적시켰다는 것이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고등교육과 좋은 일자리를 찾아 뉴욕, 런던과 같은 대도시로 떠난다. 가장 좋은 자원은 대도시에, 몇몇 대기업에, 그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 자녀들에게 대부분 분배된다. 여기에서 소외된 지방 공동체엔 분노가 쌓여왔다.

양극화가 궁극적으로 국가에 대한 결속감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닌 가네시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돈 많은 카탈루냐 지방이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하려 하듯, 앞으로는 대도시가 비생산적이고 가난한 지방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거절하고 재정 독립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지목한 선택과 집중, 도시화, 고등교육, 능력주의, 주주이익 강조와 같은 것이 모두 현재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로서 어느 하나도 포기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한 시스템을 망가뜨려 놓고 계속 그 시스템의 미덕을 찬양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경제학자들이 문제는 나름대로 진단하면서도 속시원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라잔 교수는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한 ‘포용적인 로컬리즘(지방주의)’을 제시했다.

그러나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라잔 교수 등의 시각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에 더 기울어 있다. 디턴 교수는 “능력주의라는 램프의 요정을 한 번 밖으로 꺼낸 이상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며 “지역 공동체와 로컬리즘 정책이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기회의 평등에 대한 불만이 계속 커지고, 그래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이라는 인식이 젊은 층에서 계속 확산된다면 자본주의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더욱 득세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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