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이 여야 4당이 추진하는 선거법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의 성패를 가르는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야당안 수용을 패스트트랙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바른미래당의 공수처법 수정안과 관련해 “바른미래당의 의원총회 결과를 직접 들은 바 없다. 진의를 알아본 뒤 판단하겠다”며 일단 말을 아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부정적 기류가 감지된다.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는 “하는 말을 다 들어주면 협상이 되지 않는다”고 반응했다. 한정애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도 원내정책조정회의 발언을 통해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자는 바른미래당 안대로 하면 작은 경찰을 하나 더 만들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은 전날 의총을 통해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공수처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체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공수처장 인선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를 얻도록 하고, 추천위는 7명 중 4명을 국회가 추천하되 3명을 야당 몫으로 배정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바른미래당 안이 관철될 경우 야당이 반대하는 인사는 공수처장이 될 수 없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이 여기서 또 다른 양보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이것이 바른미래당이 낼 수 있는 마지막 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이 최종적으로 무산되고 더 이상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부분에 관해선 책임지겠다”고 말해 원내대표직 사퇴도 불사하는 ‘배수진’을 쳤다.

김 원내대표가 공수처법 대안으로 민주당을 압박한 것은 내부 분란을 수습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참여 여부를 놓고 분열 사태에 이른 바른미래당이 민주당에 공을 넘기면서 한숨 돌리는 분위기”라며 “민주당은 일단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공수처법 입법에 명운을 건 만큼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쪽으로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공수처법이 바른미래당 의도대로 수정되더라도 내분을 수습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민 의원 등 옛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