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이 실험 대상이냐"…격앙된 시민들 '수천억대 손배訴'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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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지열발전이 촉발한 人災
지열발전소 작년부터 가동중단
반파된 아파트 흉물처럼 방치
이재민 일부 아직도 대피소 생활
지열발전소 작년부터 가동중단
반파된 아파트 흉물처럼 방치
이재민 일부 아직도 대피소 생활
20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 자리잡은 포항지열발전소 건설 현장.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고 시추공 주변에는 배관들이 녹슨 채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지열발전소 건설 공사는 지난해 1월 법원이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가 제기했던 공사 및 운영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중단됐다.
194가구가 살던 인근 대성아파트 주민들은 2017년 11월 15일 ‘악몽 같던’ 지진이 발생한 뒤 뿔뿔이 흩어졌다. 2차 붕괴 등을 막기 위해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다. 지진이 지열발전소 공사 때문이었다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이날 발표가 전해지자 포항 시민들은 “우리가 실험 대상이었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조급한 사업 추진이 빚은 ‘인재’
이날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열발전소에 지열정을 굴착할 때 이수(mud)가 누출됐고, 물을 주입하면서 강한 압력이 발생해 지진 단층면상에서 규모 2.0 미만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들이 시간이 지나며 임계점을 넘어섰고 리히터 규모 5.4의 ‘촉발 지진’을 일으켰다. 지열발전 시추공사 이후 크고 작은 지진은 최소 63회로 측정됐다. 2017년 발생한 지진 직후 과학계에선 진앙(震央)이 지열발전소와 불과 600m 떨어졌다는 점에서 상관관계가 클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추가 지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연구단의 설명이다. 이강근 연구단장은 “확실히 얘기할 순 없지만 위험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지열발전을 이용하는 나라는 24개국이다. 미국이 가장 많이 활용한다. 작년에만 원자력발전소 3~4기 용량인 3591㎿의 전기를 생산했다. 다만 자국 내 발전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인적·물적 피해를 낸 포항지진이 사전 준비 없이 조급하게 추진된 사업으로 빚어진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국립대 지질학 교수는 “정부는 사업을 시행할 때 너무 적은 예산으로 빠른 결과를 원한다”며 “지열발전은 한국에서 처음 하는 것이라 경험도 없고 촉발 지진에 대한 경각심도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 시민 “정부가 책임져라”
포항지역 지진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1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003명(793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정도로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지진 이튿날로 예정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됐다.
포항에는 11·15 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을 비롯해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지열발전과 포항지진 진상규명 및 대응을 위한 포항시민대책위원회 등 관련 단체가 많다. 이 중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작년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금까지 1300명가량이 참여했다. 전체 소송 규모는 수천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11·15 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의 법률분과장을 맡은 공봉학 변호사는 “지열발전소 관련 공무원이 적법하게 행정처리를 했는지 엄중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조사연구단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한 양만재 시민대표는 “정부가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63회 발생한 것을 포항 시민에게 숨겼다”며 “민간 사업자인 넥스지오와 학자들도 주민에게 지진 발생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성토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발표로 포항이 (자연적으로는) 지진에서 안전한 도시란 점이 확인돼 다행”이라며 “정부는 당장 지열발전소를 폐쇄하고 압력을 빼내는 등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촉발 지진
triggered earthquake. 시추 등에 따른 외부의 힘이 임계점에 근접해 있던 지진대를 자극해 대규모 지진을 촉발하는 형태. 인위적 힘이 지진을 직접 유발하는 유발(induced) 지진과 다르다.
포항=하인식/조재길 기자 hais@hankyung.com
194가구가 살던 인근 대성아파트 주민들은 2017년 11월 15일 ‘악몽 같던’ 지진이 발생한 뒤 뿔뿔이 흩어졌다. 2차 붕괴 등을 막기 위해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다. 지진이 지열발전소 공사 때문이었다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이날 발표가 전해지자 포항 시민들은 “우리가 실험 대상이었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조급한 사업 추진이 빚은 ‘인재’
이날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열발전소에 지열정을 굴착할 때 이수(mud)가 누출됐고, 물을 주입하면서 강한 압력이 발생해 지진 단층면상에서 규모 2.0 미만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들이 시간이 지나며 임계점을 넘어섰고 리히터 규모 5.4의 ‘촉발 지진’을 일으켰다. 지열발전 시추공사 이후 크고 작은 지진은 최소 63회로 측정됐다. 2017년 발생한 지진 직후 과학계에선 진앙(震央)이 지열발전소와 불과 600m 떨어졌다는 점에서 상관관계가 클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추가 지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연구단의 설명이다. 이강근 연구단장은 “확실히 얘기할 순 없지만 위험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지열발전을 이용하는 나라는 24개국이다. 미국이 가장 많이 활용한다. 작년에만 원자력발전소 3~4기 용량인 3591㎿의 전기를 생산했다. 다만 자국 내 발전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인적·물적 피해를 낸 포항지진이 사전 준비 없이 조급하게 추진된 사업으로 빚어진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국립대 지질학 교수는 “정부는 사업을 시행할 때 너무 적은 예산으로 빠른 결과를 원한다”며 “지열발전은 한국에서 처음 하는 것이라 경험도 없고 촉발 지진에 대한 경각심도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 시민 “정부가 책임져라”
포항지역 지진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1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003명(793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정도로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지진 이튿날로 예정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됐다.
포항에는 11·15 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을 비롯해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지열발전과 포항지진 진상규명 및 대응을 위한 포항시민대책위원회 등 관련 단체가 많다. 이 중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작년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금까지 1300명가량이 참여했다. 전체 소송 규모는 수천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11·15 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의 법률분과장을 맡은 공봉학 변호사는 “지열발전소 관련 공무원이 적법하게 행정처리를 했는지 엄중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조사연구단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한 양만재 시민대표는 “정부가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63회 발생한 것을 포항 시민에게 숨겼다”며 “민간 사업자인 넥스지오와 학자들도 주민에게 지진 발생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성토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발표로 포항이 (자연적으로는) 지진에서 안전한 도시란 점이 확인돼 다행”이라며 “정부는 당장 지열발전소를 폐쇄하고 압력을 빼내는 등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촉발 지진
triggered earthquake. 시추 등에 따른 외부의 힘이 임계점에 근접해 있던 지진대를 자극해 대규모 지진을 촉발하는 형태. 인위적 힘이 지진을 직접 유발하는 유발(induced) 지진과 다르다.
포항=하인식/조재길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