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조성 안 된 부지, 2020년 7월 일제히 공원 용지 해제
전국 우선관리지역 부지 매입에만 당장 보상비 '14조원'필요


[※ 편집자 주 = 내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이 부산합니다.

1999년 10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촉발된 일몰제의 파장은 지자체에 적지 않은 변화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는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으로 예상되는 변화와 문제점, 대안 등을 6편으로 나눠 조명합니다]
[공원일몰제] ① 1년 뒤 동네 공원이 사라진다…서울 ⅔ 크기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서울시 은평구에 사는 김지명(가명)씨는 최근 뒷산 공원에서 낯선 푯말을 보곤 얼굴을 찌푸렸다.

고층건물이 빽빽한 도심에서도 흙길을 따라 걸을 수 있고, 계절 변화를 느끼게 해 주는 나무도 무성해 평소 아내와 함께 산책 삼아 자주 가던 곳이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며 힐링의 공간으로 10년 넘게 애용하던 공원이지만, 푯말과 펜스가 설치되고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결국 김씨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는 내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가 본격 시행되면 전국 상당수 공원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가상 사례다.

공원일몰제란 도시관리 계획상 공원 용지로 지정돼 있지만 장기간 공원 조성 사업에 착수하지 못한 부지를 공원 용도에서 자동 해제토록 한 제도이다.

사유지에 공원·학교·도로 등 도시계획시설을 지정해 놓고, 보상 없이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사유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1999년 헌법재판소 판결이 근거다.

사유지가 공원에서 일제히 해제되는 'D 데이'는 2020년 7월 1일. 불과 1년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2000년 제정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부칙은 20년간 원래 목적대로 개발되지 않는 도시계획시설은 2020년 7월 1일을 기해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한다는 규정을 담았다.
[공원일몰제] ① 1년 뒤 동네 공원이 사라진다…서울 ⅔ 크기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공원 부지 중 정식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내년 7월 도시관리 계획상 공원 용지의 효력을 잃을 수 있는 '실효 대상' 공원의 면적은 전국적으로 396.7㎢.
국내 전체 공원시설 942.2㎢의 42.1%에 달하며, 서울시 전체 면적(605.2㎢)의 3분의 2와 맞먹는 규모다.

실효 대상 공원 면적의 27%(107㎢)는 국공유지이고 나머지는 사유지다.

사유지의 공원 용지 효력이 없어지면 토지 소유주는 개발 행위에 착수할 수 있다.

상가나 아파트 개발 등 무분별한 난개발이 우려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도시공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공원으로 쓸 수 있는 땅들이 대폭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실정이다.

정부와 전국 지자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공원 조성 업무가 지자체 사무라는 이유로 국고 보조에 소홀했고, 지자체는 공원 조성 사업을 단체장 공약사업보다 후순위로 놓고 예산 확보를 미루다가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이번 사태를 맞게 됐다.

정부는 실효 대상 공원을 모두 살리기에는 현실적으로 늦었다고 보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집행 공원이지만 실제로 주민이 공원처럼 이용하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우선 관리지역(가칭)'을 선별해 공원 조성에 속도를 내도록 할 방침이다.

우선 관리지역은 실효 대상 공원의 약 30%인 116㎢ 규모로 약 14조원의 보상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각 지자체도 지방채 발행 등 재원 조달 계획을 구체화하며 공원 사수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인천시는 실효 대상 7.2㎢ 중 국·공유지, 개발제한구역, 재정비 지역 등을 제외하고, 2022년까지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2.9㎢를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사업비 5천641억원은 지방채, 군·구비, 수도권특별회계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서울시도 2020년 6월까지 우선 보상 대상지 2.3㎢를 매입해 공원 기능을 유지할 방침이다.

서울시 예산과 20년 만기 지방채 등을 동원해 1조6천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나머지 사유지 37.5㎢는 2021년부터 보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공원일몰제] ① 1년 뒤 동네 공원이 사라진다…서울 ⅔ 크기
시민환경단체는 그러나 정부의 공원 보전 대책이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며 공원일몰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국·공유지 일몰 배제부터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내년 실효 대상인 공원 상당수는 정부가 1970년대에 공원 지정 후 사업을 시행하지 않은 채 1995년 인력·재원 지원 없이 지방정부로 사무를 이양한 것이라며, 지자체의 토지 보상 예산의 80%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실효 대상 공원을 매입하기 위한 국비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근거로 공원 실효를 유예하는 법규를 입법해야 한다"며 "정부는 철도·도로 등 SOC에만 과도하게 투자할 것이 아니라 도시의 중요한 자산인 공원을 지키며 '그린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종구 김용민 정윤덕 이상학 김광호 박재천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