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는 등 조선업 재편이 한창이지만 중형 조선사들은 일감 부족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후폭풍을 우려해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감 없는 중형 조선사

7일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 실적(물량 기준)은 54만7000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전년보다 26.2% 줄었다. 금액으로도 13.6% 감소한 10억8000만달러(약 1조2189억원)에 그쳤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를 포함한 한국 조선업계가 지난해 7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수주량 세계 1위를 탈환한 것과 비교된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 집계 결과 작년 한국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 실적은 전년보다 71.8% 증가한 1307만9767CGT에 달했다. 수주액도 55.3% 늘어난 269억4633만달러(약 30조4170억원)에 이른다. 선박 수주 증가분 대부분을 빅3가 가져간 결과라는 분석이다.

중형 조선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2010년 39억5000만달러를 수주해 국내 조선시장에서 12.6% 점유율을 기록했던 중형 조선사의 작년 국내 시장 점유율(수주액 기준)은 4% 수준에 그쳤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6년(10.0%) 이후 최저치다.

중형 조선사 대주주는 국책은행

1937년 문을 연 국내 최고(最古) 조선업체인 한진중공업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부산 영도의 비좁은 조선소 때문에 대형 선박 수주에 애로를 겪던 이 회사는 필리핀 수비크에 초대형 조선소를 건설했지만 수주 부진 여파로 자본잠식에 빠졌다. 한진중공업이 산업은행 아래로 들어가면서 5대 중형 조선사(한진·STX·성동·대한·대선)의 경영권을 모두 국책은행이 갖게 됐다.

중형 조선사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일감 부족이다. 해운업계가 단위당 운송 비용 절감과 환경 규제 대응 차원에서 대형 선박을 주로 발주하고 있어 중형 조선사 먹거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작년 중형 조선사가 주로 건조한 1만DWT(재화중량톤수)급 선박 발주량은 999만CGT로 전년보다 15.6%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상선 수주에 성공한 중형 조선사는 전남 해남의 대한조선과 부산의 대선조선 두 곳뿐이다.

조선업계가 대형사 위주로 재편되면서 중형 조선소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다. 경남 통영의 성동조선해양은 작년 10월과 지난 2월 매각 작업이 무산된 가운데 이달 3차 매각을 앞두고 있다. 수주가 꾸준한 대선조선도 지난해 가격 문제로 매각에 실패했다. 한때 세계 4위 조선사였던 STX조선해양은 선수금환급보증(RG) 문제로 수주에 애를 먹고 있다. 조선사가 주문받은 배를 넘기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은행이 발주처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고 보증을 서는 RG를 받지 못하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선업계 안팎에선 중형 조선사의 공급과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도 위기에 몰린 이들 조선사의 구조조정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부 중형 조선사들이 저가 수주 등 ‘제살 깎기’ 경쟁에 나서면서 경쟁력을 확보한 조선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