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최저임금 결정, 제도 도입 목적 잊으면 안돼
정부의 최저임금제도 개편안이 두 차례 연기된 끝에 지난달 26일 발표됐다. 개편안의 골자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법에 명시되는 결정기준에 기존의 근로자생계비, 소득분배율 등 4개를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포함해 7개로 확대하는 것이다. 구간설정위원회에는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소상공인 대표가 참여한다. 최저임금 확정시기도 예년의 8월 5일에서 10월 5일로 두 달 늦춰진다.

이 정부안에 대해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당사자가 배제되는 구간설정위원회 신설 등 결정구조 이원화에 대한 반대와 함께 결정기준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추가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경영계는 당초 포함됐던 ‘기업의 지급능력’ 대신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한 정부안은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의 반발 속에 작년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올 1월 1일부터 적용된 산입범위 확대는 고액 연봉자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고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도 우리 노사 현실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듯하다. 정부안이 제시한 결정구조 이원화는 기존의 최저임금 결정방식 관행을 제도화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결정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까지 노사가 각각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률을 상한선과 하한선으로 두고 공익위원 주도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해 왔다. 이원화된 결정구조에서도 결정위원회 공익위원 가운데 노사 추천을 제외한 7명 중 5명은 정부와 여당이 추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이 주도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는 변함이 없다.

정부안은 확정 시기가 늦어지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부 예산, 기업 등의 대처를 어렵게 만들 수 있으나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충분히 파악한 뒤 내년도 인금인상을 확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준인 ‘고용에 대한 영향’은 최저임금 결정에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년여의 경험이 입증하듯 기업의 지급능력이 취약해지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영계의 요구가 반영된 듯 보이지만, 고용은 결과치이고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법이 3월 안에 개정돼야 한다. 정부안을 중심으로 논의되겠지만 현재 발의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70개가 넘어 국회 논의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향후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을 논의할 때 여야, 정부 그리고 당사자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최저임금법의 도입 목적이다.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목적은 노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취약한 저임금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되고 초기 수년간 최저임금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단신근로자의 표준생계비였다. 도입 목적에 맞게 제도가 운용되도록 틀을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제도의 보호 대상이 돼야 하는 많은 근로자의 고용 기회가 박탈되고, 근로자와 처지가 다르지 않은 영세 소상공인이 고통을 받고, 연봉 5000만~6000만원이 넘는 대기업 근로자의 연봉이 2년 연속 30% 가까이 최저임금 때문에 올라가는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끝으로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이 일자리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용참사 원인의 하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더 큰 개혁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 고통 받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소상공인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냉정하게 재검토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