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김정은 의욕 잃은 느낌" 이례적 발언…金의중 실린 듯
한밤 포문 연 北리용호·최선희…'김정은 지시' 없이 불가능
북미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침묵하던 북한이 28일 밤 전격적으로 회견을 열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됐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빈손'으로 마무리하고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로 돌아온 후 두문불출했다.

밤이 깊어가고 멜리아 호텔 주변에도 고요가 계속되면서 현지의 취재진 사이에서도 북한 대표단이 직접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은 희박해졌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한밤 회견'이 하노이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유다.

자정이 다 된 시간임에도 북한이 '포문'을 연 것은 제재 전면 해제가 결렬의 실마리였다는 미국의 주장에 나름대로 방어를 해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주장을 반박하면서 "유엔 제재결의 5건 가운데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을 해제하면 영변 핵시설 안의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는 자신들의 요구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비핵화 결단의 키를 쥐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적인 지시, 최소한 '재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발표다.

특히 최 부상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북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좀 이해하기 힘들어하시지 않는가"라며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속마음'을 추측해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 체제에서 함부로 나오기 힘든 발언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 역시도 김 위원장의 뜻이 직접 실린 말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협상 의지가 이제까지 핵심적인 추동력 역할을 해 왔지만,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풀 꺾일 수도 있다는 압박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다만 이날 회견장에 실제 대미협상 테이블에 주로 앉았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대신 외무성의 두 사람이 나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리 외무상은 27일 친교 만찬과 28일 확대회담에 배석하기는 했지만 폼페이오 장관을 직접 상대해온 인사는 김영철이다.

김혁철 특별대표는 이번에 최선희 부상을 대신해 북측의 새로운 실무협상대표로 나섰다.

실제 협상장에 나가야 하는 김영철·김혁철 대신 '스피커'에 가까운 리용호·최선희를 내세운 데서, 여론전에 밀리지 않겠지만 판을 깨지도 않겠다는 북한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이번 회담 결렬로 김영철과 김혁철의 정치적 입지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