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성의 블로소득] 도박장 된 코인시장, 방관한 정부는 책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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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 방조한 책임 있어
가상화폐(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입장은 한 마디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로 요약된다.
지난해 1월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정부는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꼬박 1년 지난 올해 1월 암호화폐 공개(ICO)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 규제 도입 등 실질적 후속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뒷짐 진 그 1년 동안 암호화폐 시장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세우겠다며 ICO로 자금을 모집한 뒤 잠적한 퓨어빗, 시세조작·출금지연 논란에 이용자들이 소송에 나선 올스타빗, 아파트를 경품으로 내걸고 이용자를 모았다가 급작스레 파산을 선언한 루빗…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다. 업계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본다. 작년 10월 코인이즈 재판을 계기로 '집금계좌(벌집계좌)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러면서 투자자 눈에 들기 위해 고액의 암호화폐, 포르쉐·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차 등을 앞세운다. 거래소 수익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부담은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는 구도다.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의 문턱이 낮다는 점도 시장 혼탁에 한몫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암호화폐 거래소의 통신판매업자 지위를 박탈했음에도 여전히 거래소들은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고 있다. 웹사이트와 모바일로 이용 가능한 거래소 플랫폼도 5000만원 정도면 해외에 외주를 줘 구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 규제 자체가 없고, 사업 시작에 들어가는 비용도 적게 들어 '한 탕'을 노리고 뛰어드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나오게 마련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냉각되면서 상황은 한층 악화됐다. 공태인 코인원리서치센터장은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가 줄면서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위한 '한 탕주의'가 더 심해졌다"며 "신규 암호화폐 프로젝트와 거래소 모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거래소에서는 백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암호화폐가 상장돼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생기곤 한다. 도박장이나 다름없이 된 것이다.
시장의 자정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자율규제방안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여러 블록체인 단체들이 ICO·거래소 공개(IEO)·증권형 토큰 공개(STO)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작업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정부가 받쳐주지 못한 탓이다. 자율규제에 동참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데 괜히 나서서 손해 봤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16세기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그레샴이 "실제 가치가 명목 가치에 미달하는 화폐가 시장에 유통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정량을 지킨 화폐는 누군가의 창고로 들어가 시장에 유통되지 않을 것"이라며 언급한 표현이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의 상황도 이와 같다.
정부는 뒷짐을 진 채 시장을 방치하고 있다. 국회에도 2017년부터 10여개의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규제하겠다"는 공수표만 남발하며 시장 왜곡을 방조한 셈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 제시 자체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암호화폐와 ICO를 공인한 것으로 오해를 낳아 이를 악용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이 도박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정부가 이제라도 팔짱을 풀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지난해 1월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정부는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꼬박 1년 지난 올해 1월 암호화폐 공개(ICO)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 규제 도입 등 실질적 후속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뒷짐 진 그 1년 동안 암호화폐 시장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세우겠다며 ICO로 자금을 모집한 뒤 잠적한 퓨어빗, 시세조작·출금지연 논란에 이용자들이 소송에 나선 올스타빗, 아파트를 경품으로 내걸고 이용자를 모았다가 급작스레 파산을 선언한 루빗…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다. 업계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본다. 작년 10월 코인이즈 재판을 계기로 '집금계좌(벌집계좌)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러면서 투자자 눈에 들기 위해 고액의 암호화폐, 포르쉐·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차 등을 앞세운다. 거래소 수익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부담은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는 구도다.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의 문턱이 낮다는 점도 시장 혼탁에 한몫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암호화폐 거래소의 통신판매업자 지위를 박탈했음에도 여전히 거래소들은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고 있다. 웹사이트와 모바일로 이용 가능한 거래소 플랫폼도 5000만원 정도면 해외에 외주를 줘 구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 규제 자체가 없고, 사업 시작에 들어가는 비용도 적게 들어 '한 탕'을 노리고 뛰어드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나오게 마련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냉각되면서 상황은 한층 악화됐다. 공태인 코인원리서치센터장은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가 줄면서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위한 '한 탕주의'가 더 심해졌다"며 "신규 암호화폐 프로젝트와 거래소 모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거래소에서는 백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암호화폐가 상장돼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생기곤 한다. 도박장이나 다름없이 된 것이다.
시장의 자정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자율규제방안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여러 블록체인 단체들이 ICO·거래소 공개(IEO)·증권형 토큰 공개(STO)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작업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정부가 받쳐주지 못한 탓이다. 자율규제에 동참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는데 괜히 나서서 손해 봤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16세기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그레샴이 "실제 가치가 명목 가치에 미달하는 화폐가 시장에 유통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정량을 지킨 화폐는 누군가의 창고로 들어가 시장에 유통되지 않을 것"이라며 언급한 표현이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의 상황도 이와 같다.
정부는 뒷짐을 진 채 시장을 방치하고 있다. 국회에도 2017년부터 10여개의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규제하겠다"는 공수표만 남발하며 시장 왜곡을 방조한 셈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 제시 자체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암호화폐와 ICO를 공인한 것으로 오해를 낳아 이를 악용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이 도박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정부가 이제라도 팔짱을 풀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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