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일자리에 '갑을' 관계 뒤바뀐 미국 구직 시장
전례 없는 일자리 시장 호황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인재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우수 인재를 먼저 뽑기 위해 최종 합격자를 대상으로 고액의 ‘채용 보너스’를 제시하는 구인 광고가 유행하는 중이다. 다른 기업에 인재를 빼앗길 것을 우려해 회사가 직원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10일(현지시간) 미국 구인·구직 사이트인 글래스도어를 인용한 보도를 통해 신규 구직자 유인을 목적으로 채용 보너스를 내걸고 있는 9개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들 기업이 제시하고 있는 상금은 적게는 250달러(약 28만원)에서 최대 1만달러(약 1125만원)에 이른다. 기업들이 속한 분야는 자동차보험, 헬스케어, 호텔서비스, 정보기술(IT), 식품제조업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높은 채용 보너스를 내건 것은 IT 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다. 5년 이상 경력을 갖춘 IT 기술자 채용을 위해 1만달러를 제시했다. 내부 직원에게도 사람을 추천 받고 해당 인재가 채용될 경우 8000달러(약 900만원)를 준다. IT 업체가 아님에도 1만달러에 준하는 상금을 내건 회사도 있다. 비영리 병원업이 주 업무인 헬스케어 대기업 크리스투스 헬스는 의료 업계 종사자 확보를 위해 6000~1만달러의 채용 보너스를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회사인 가이코처럼 내부 채용에 대해 보너스를 제시하는 사례도 있다. 신규 인력을 유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부 인력을 대상으로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가이코는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활동할 보험판매 영업원, 보험심사청구 담당자 등의 내부 채용을 위해 각각 4000달러(약 450만원)의 상금을 제시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해 직원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나선 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16년부터 신청자를 대상으로 매년 인당 1200달러(약 135만원)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 상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보험사인 애트나는 동일한 제도를 2017년부터 인당 2000달러 수준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 기업들이 우수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사상 최저 수준의 미국의 실업률 때문에 인재 수급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견조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지난 1월 4%를 기록하는 등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을 보이고 있다.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 1월 발간한 미국 경제 동향 보고서에서 기업들의 구인난 문제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에 대한 선택권이 높아진 미국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 다른 통보 없이 잠수를 타 버리는 ‘고스팅(ghosting)’이 늘어가고 있다. 구직자들 사이에서 지금 다니는 곳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가 얼마든지 더 많이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WP는 글로벌 인력회사 로버트 하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 전역 취업시장에서 고스팅 발생률이 10~20% 늘어났다고 밝혔다.

WP는 미국의 구직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갑을 관계 역전’ 상황에 기업들이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채용 초기 단계에서부터 구직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지난달 IBM을 포함한 17개 기업들은 인재가 부족하고 조기 이탈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직원들을 채용한 직후 장기간 교육에 투입하는 도제식 수습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