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왜 벤처 1세대는 안 나오려하죠?" 이재웅 "많이 힘들어지니까요"
지난해 7월이었다. 차량공유업체 쏘카에서 “이재웅 대표(사진)가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내심 의외였다.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창업자라는 것 외에도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은둔의 경영자’로 유명했다.

이 대표는 네이버의 이해진, 카카오 김범수, 넥슨 김정주, 엔씨소프트 김택진 창업자 등과 모두 절친한 사이다. 이들 ‘5총사’는 2014년 벤처기업 지원업체 ‘C프로그램’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한 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물었다. “벤처 1세대들은 왜 이렇게 안 나오려고 합니까?” 이 대표의 답은 솔직했다. “아주 많이 힘들어지니까요.”

이 대표는 “정부와 접촉하면 한 군데로 끝나지 않고 여기저기 계속해야 하고, 언론에 나서면 좋은 뉴스도 나오지만 나쁜 기사도 많아진다”고 했다. 그는 “국내 많은 정보기술(IT) 벤처가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성과를 냈는데 어두운 면만 조명되는 측면이 있다”며 “억울한 느낌이 들면 더 나가기 싫어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런 풍토가 후배 창업자들에겐 ‘성공해도 매도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2008년 다음을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가능하면 바깥 활동은 줄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다만 “되돌아보면 외부와의 소통에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후회도 든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국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과도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에서 기업하며 많은 혜택을 본 이상 ‘한국 기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과 정부,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이해하면 풀 수 있는 문제도 소통 부족 탓에 풀리지 않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여러 경제 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혁신 동력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며칠 뒤 그가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공동 본부장을 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혁신성장 정책과 관련해 벤처업계 목소리를 전달하는 가교 역할이다. ‘성공한 벤처 선배’로서 급격히 떨어진 한국 IT산업의 혁신 동력을 되살리는 데 일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엿보였다.

한동안 언론 인터뷰와 외부 행사에 꼬박꼬박 응하며 ‘혁신 전도사’ 역할에 최선을 다한 그의 선의(善意)는 안타깝게도 통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혁신성장본부 공동 본부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초 위촉장을 받은 지 넉 달 만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정책에 아무런 진전을 만들지 못했다”며 “여기까지가 제 능력의 한계”라고 적었다. 업계에선 그가 짧은 활동 기간에 적지 않은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기업으로 돌아간 그는 다시 외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쏘카 측은 “이 대표는 당분간 내부 경영에 집중할 것”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