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초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신이 받은 수모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은 것에 안도한 아버지께 나는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임종 순간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예상외로 빙긋이 웃으며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현금은 피와 같다. 피가 없으면 생물이 죽듯이 현금이 없으면 기업은 망한다. 그러니 현금이 마르지 않게 군데군데 비축해야 한다. 둘째, 아무리 현금을 마르지 않게 하고 싶어도 현금은 가두어 놓을 수도 없고 물처럼 빠져나가니, 현금이 마르는 것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때를 대비해 숨겨둔 주머니마저 말라버리면 돈이 씨가 마르는 상황을 겪게 된다. 그때 사업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신용이다. 평소에 신용을 쌓아두면 일시적으로 현금이 마를 때 극복할 수 있다.
셋째, 아무리 신용을 잃고 싶지 않아도 돈이 없으면 신용을 잃을 수밖에 없다. 돈이 없고 갚을 능력이 없어도 도망 다니지 말아라. 채권자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아무 데도 없다. 단 한 군데가 있는데, 그곳은 채권자의 마음이다. 매일 출근하듯 채권자를 찾아가서 짜장면도 사달라고 하고, 소주도 사달라고 하면서 귀찮을 정도로 얼굴을 보여라. 그래야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 한 줌 에너지를 “아들아! 최악의 경우에도 비참해하지 말아라”는 간절함에 소진하셨다. 유언이었다.
20년간 사업하면서 정해진 날짜에 직원 급료를 어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늘 더 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간 숱하게 필요한 때 필요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했다. 그렇게 국내외 4개 공장에서 400여 명이 매출 1000억원을 내는 작은 기업군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늘 불안했고, 아버지 유언의 세 번째 당부까지 가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해 단속했다. 그리고 그 유언은 어느덧 든든한 유산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