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강성 親文'의 귀환…청와대 '입김' 더 세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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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진 개편
노영민 비서실장
대선때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장…홍영표 원내대표와도 돈독
기업 경영 독특한 이력…"경제 활력 불어넣을 적임자"
강기정 정무수석
운동권 출신·3선 국회의원…'親·反文 갈등' 때 '文 호위무사'
법안 날치기 시도때 몸싸움…대인관계·對野 협상력은 탁월
노영민 비서실장
대선때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장…홍영표 원내대표와도 돈독
기업 경영 독특한 이력…"경제 활력 불어넣을 적임자"
강기정 정무수석
운동권 출신·3선 국회의원…'親·反文 갈등' 때 '文 호위무사'
법안 날치기 시도때 몸싸움…대인관계·對野 협상력은 탁월
‘대통령이 힘들고 어려울 때 찾는 문(文)의 남자’, ‘문의 호위무사’.
돌고 돌아 ‘국정 2인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선임수석비서관 격인 정무수석에 임명된 노영민 주중 대사와 강기정 전 의원을 일컫는 말이다. 두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승리한 직후부터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후보 각각 1순위에 올랐지만 ‘친문(친문재인) 성향’이 발목을 잡아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전병헌 전 정무수석이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금 유용 의혹으로 낙마했을 때도 ‘호출’을 받았지만 광주시장 출마를 이유로 고사하기도 했다.
코드인사로 친정체제 강화
노 신임 비서실장은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원조 친문’ 인사로 꼽힌다. 대선 국면에 영입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신(新)문’으로 불린 것과 달리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두 차례 대권 도전 때 후보 비서실장과 조직운영본부장으로 보좌했다. 정권 창출의 지분만 놓고 볼 때 여권에서 노 실장보다 앞선 이를 꼽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2·8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한 토론회에서 ‘주요 정치 현안을 누구와 상의하냐’는 질문을 받고 망설임 없이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노 실장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노 실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직을 맡은 2015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결제 단말기를 두고 상임위 산하기관에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인 청주로 낙향했다.
비슷한 시기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문 대통령도 당내 친문과 반문(반문재인) 간 갈등으로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하자 당권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넘기는 등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차를 몰고 자택이 있는 경남 양산으로 향하던 문 대통령은 노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나 합시다”고 청했다고 한다. 정치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지만 낙향한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끈끈한 인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 신임 정무수석은 국회 입성 후 ‘정세균계’로 분류됐다. 2008년에는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낼 때 ‘당3역’ 중 하나인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발탁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정책위 의장에서 물러난 뒤 당이 친문과 반문 간 갈등으로 내분의 최정점에 달했을 때 ‘문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친문’ 이미지를 굳혔다. 특히 비문(비문재인)과 반문이 연합전선을 펴며 문 대통령의 당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데 맞서면서 친문그룹의 눈도장을 받는 동시에 반문그룹에 찍혀 공천에서 탈락하는 빌미가 됐다.
친문 정권엔 ‘양날의 칼’ 분석도
노 실장은 과거 민주당이 계파 갈등을 겪을 때마다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지만 대인관계에서는 온화하다는 평을 받는다. 전기 기술자에서 시인, 국회의원까지 다양한 삶의 이력이 보여주듯 앞으로 당청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크다.
노 실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면서 기업을 경영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80년대 ‘현장’에서 전기 노동자로 활동하면서 전기기능기사 등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후 금강전기라는 회사를 설립해 약 10년간 경영했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고위공직자 주식백지신탁 시행에 따라 매각했다. 정치권에서 그를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부르는 이유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노 실장을 소개하며 “국회에서 다년간 신성장 산업포럼을 이끌어 산업·경제계를 비롯한 각계 현장과의 네트워크 및 소통 능력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혁신적 포용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다질 최고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노 실장이 청와대 기율을 새롭게 다잡으면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도 적극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노 실장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막역한 데다 당내 의원들과도 두루 가까운 점을 들어 청와대와의 소통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노 실장과 홍 원내대표는 1957년생 동갑내기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후보 비서실장과 선거캠프 상황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 모두 친문계 핵심인사로 꼽힌다.
강 수석에겐 ‘폭력의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과거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전 법안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에 나서면서 상대 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 ‘몸싸움’ 하면 ‘강기정’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강 수석은 강성 이미지에 가려 있지만 대표적인 의회주의자로 만만찮은 협상력을 보여줬다. 정책위 의장 시절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강 수석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공무원연금법 협상엔 어떤 연계 법안도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키지 않았다면 법안 통과는 불가능했다는 게 당시 원내지도부의 공통된 평가다. 초선이었던 전임 한병도 수석과 달리 3선 중진의원 출신으로 무게감도 있어 단순히 청와대의 ‘메신저’가 아니라 당·정·청 간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노영민 비서실장 약력
△1957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제17~19대 국회의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주중 대사
■강기정 정무수석 약력
△1964년 전남 고흥 출생
△광주 대동고 졸업
△전남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제17~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손성태/김형호 기자 mrhand@hankyung.com
돌고 돌아 ‘국정 2인자’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선임수석비서관 격인 정무수석에 임명된 노영민 주중 대사와 강기정 전 의원을 일컫는 말이다. 두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 승리한 직후부터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후보 각각 1순위에 올랐지만 ‘친문(친문재인) 성향’이 발목을 잡아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전병헌 전 정무수석이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금 유용 의혹으로 낙마했을 때도 ‘호출’을 받았지만 광주시장 출마를 이유로 고사하기도 했다.
코드인사로 친정체제 강화
노 신임 비서실장은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원조 친문’ 인사로 꼽힌다. 대선 국면에 영입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신(新)문’으로 불린 것과 달리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두 차례 대권 도전 때 후보 비서실장과 조직운영본부장으로 보좌했다. 정권 창출의 지분만 놓고 볼 때 여권에서 노 실장보다 앞선 이를 꼽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2·8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한 토론회에서 ‘주요 정치 현안을 누구와 상의하냐’는 질문을 받고 망설임 없이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노 실장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노 실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직을 맡은 2015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결제 단말기를 두고 상임위 산하기관에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인 청주로 낙향했다.
비슷한 시기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문 대통령도 당내 친문과 반문(반문재인) 간 갈등으로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하자 당권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넘기는 등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차를 몰고 자택이 있는 경남 양산으로 향하던 문 대통령은 노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나 합시다”고 청했다고 한다. 정치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지만 낙향한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끈끈한 인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 신임 정무수석은 국회 입성 후 ‘정세균계’로 분류됐다. 2008년에는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낼 때 ‘당3역’ 중 하나인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발탁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정책위 의장에서 물러난 뒤 당이 친문과 반문 간 갈등으로 내분의 최정점에 달했을 때 ‘문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친문’ 이미지를 굳혔다. 특히 비문(비문재인)과 반문이 연합전선을 펴며 문 대통령의 당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데 맞서면서 친문그룹의 눈도장을 받는 동시에 반문그룹에 찍혀 공천에서 탈락하는 빌미가 됐다.
친문 정권엔 ‘양날의 칼’ 분석도
노 실장은 과거 민주당이 계파 갈등을 겪을 때마다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지만 대인관계에서는 온화하다는 평을 받는다. 전기 기술자에서 시인, 국회의원까지 다양한 삶의 이력이 보여주듯 앞으로 당청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크다.
노 실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면서 기업을 경영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80년대 ‘현장’에서 전기 노동자로 활동하면서 전기기능기사 등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후 금강전기라는 회사를 설립해 약 10년간 경영했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고위공직자 주식백지신탁 시행에 따라 매각했다. 정치권에서 그를 ‘시장을 아는 운동권’으로 부르는 이유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노 실장을 소개하며 “국회에서 다년간 신성장 산업포럼을 이끌어 산업·경제계를 비롯한 각계 현장과의 네트워크 및 소통 능력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혁신적 포용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다질 최고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노 실장이 청와대 기율을 새롭게 다잡으면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도 적극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노 실장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막역한 데다 당내 의원들과도 두루 가까운 점을 들어 청와대와의 소통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노 실장과 홍 원내대표는 1957년생 동갑내기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후보 비서실장과 선거캠프 상황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 모두 친문계 핵심인사로 꼽힌다.
강 수석에겐 ‘폭력의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과거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전 법안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에 나서면서 상대 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 ‘몸싸움’ 하면 ‘강기정’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강 수석은 강성 이미지에 가려 있지만 대표적인 의회주의자로 만만찮은 협상력을 보여줬다. 정책위 의장 시절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강 수석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공무원연금법 협상엔 어떤 연계 법안도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키지 않았다면 법안 통과는 불가능했다는 게 당시 원내지도부의 공통된 평가다. 초선이었던 전임 한병도 수석과 달리 3선 중진의원 출신으로 무게감도 있어 단순히 청와대의 ‘메신저’가 아니라 당·정·청 간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노영민 비서실장 약력
△1957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 졸업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제17~19대 국회의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주중 대사
■강기정 정무수석 약력
△1964년 전남 고흥 출생
△광주 대동고 졸업
△전남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제17~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손성태/김형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