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드라마(정치 불안) 탓에 월스트리트의 투매(증시 불안)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됐다.”(로이터통신)

크리스마스 전날 뉴욕증시 3대 지수가 모두 1% 이상 내린 것은 사상 처음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선 다우지수가 2.91% 내렸고, S&P500지수는 2.71%, 나스닥지수는 2.21% 하락했다. 크리스마스인 25일에는 도쿄증시가 폭락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날 닛케이225지수는 5.01% 급락했다. 1년8개월 만의 최저치, 1년3개월 만의 지수 20,000선 붕괴, 1959년 이후 59년 만의 최대 규모 12월 하락률 등 좋지 않은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다우 무너지자 닛케이 5% 털썩…트럼프가 '시장 공포' 부채질
‘불안’이 뒤흔든 시장

뉴욕증시 부진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중앙은행(Fed)의 대립과 같은 정치리스크가 촉발했다. 내년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오전 ‘제롬 파월 의장 해임’ 얘기를 또 들고나왔다. 그는 트위터에서 “미국 경제의 유일한 문제는 Fed”라고 썼다.

주말에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JP모간체이스 등 주요 은행의 유동성 상황을 긴급 점검한 것도 불안을 부추겼다. 퀸시 크로스비 푸르덴셜파이낸셜 수석연구원은 “미 정부가 현재 경제상황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트윗, 국경장벽 예산 필요성을 강조한 트윗도 시장의 걱정을 키웠다. 미 행정부의 셧다운 장기화 가능성도 투자자 불안에 한몫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증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日증시 강타한 충격파

다우 무너지자 닛케이 5% 털썩…트럼프가 '시장 공포' 부채질
24일이 일왕 생일이었던 까닭에 25일 나흘 만에 개장한 도쿄증시엔 뉴욕증시 하락의 충격파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쳤다. 닛케이225지수는 5.01%나 급락하며 2017년 4월 이후 1년8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락폭도 1010.45포인트로 올 2월6일(-1071.84포인트) 이후 최대치였다.

도쿄증시 1부 상장사의 98%가 하락하는 ‘묻지마 하락’이 연출됐다. 도요타자동차(-5.25%) 소니(-5.55%) 파나소닉(-5.56%) 등 일본 대표주들도 무더기로 폭락했다.

도쿄증시 급락은 미국발 악재에다 엔화 강세 우려 등이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해외 주요 증시가 휴장한 시점에서 도쿄증시가 문을 열면서 주식을 팔고 보자는 해외 투자자의 투매 타깃이 됐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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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달러화 대비 엔화값이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일본 기업의 향후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값은 한때 110.0엔을 기록하는 등 110엔 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엔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구보타 게이타 에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달러당 110엔 선 붕괴가 가시화하면서 일본 기업 수익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일본 주식을 팔려는 수요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하이증시도 전거래일 대비 0.88% 하락한 2504.82로 마감했다.

우려 커진 세계 증시 장기 침체

‘크리스마스 폭락’으로 미·일 증시가 초토화하면서 비관적 전망이 늘고 있다. 지난 9월까지 뉴욕증시는 글로벌 증시에 비해 상대적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10월3일 파월 Fed 의장이 “정책금리가 중립금리에서 멀리 있다”고 언급한 이후 연일 추락해 석 달 만에 주요 지수가 20%나 폭락했다. S&P500지수도 9월 기록한 최근 1년 최고치 대비 20% 이상 하락했고, 나스닥지수도 연중 고점 대비 25%가량 내리는 등 약세장에 이미 진입했다는 지적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 증시가 약세장을 나타낼 때 평균 30.4%의 하락세를 나타냈고 약세장에서 완전히 회복하는 데 평균 21.9개월이 걸렸다. 뉴욕증시에 앞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독일 닥스지수 등 상당수 글로벌 증시는 이미 약세장에 들어갔다. 뉴욕의 투자자문사 CCB인터내셔널의 마크 졸리 전략가는 “내년에 글로벌 증시 하락세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해지면서 미 국채 가격은 급등했다. 10년물은 전장보다 4.2bp(1bp=0.01%포인트) 하락한 연 2.741%를 기록했다. 특히 2년물은 7.6bp 낮은 2.559%까지 급락해 1년물 금리(2.645%)와 역전됐다.

뉴욕=김현석/도쿄=김동욱/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