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자유한국당 임이자 위원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간사(왼쪽), 바른미래당 김동철 간사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 방향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자유한국당 임이자 위원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간사(왼쪽), 바른미래당 김동철 간사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 방향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에 이번엔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 폭탄’이 떨어질 판이다. 여야 정치권은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책임을 원청업체와 사업주가 지도록 하는 내용의 산안법 전부개정안을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24일 의견을 모았다. 일부 이견이 있는 법 조항은 26일 추가 논의하기로 했지만, 큰 틀의 합의는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는 산업현장의 중대재해를 막겠다는 취지와 달리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 사고 직후인 지난 19일부터 논의를 시작한 여야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여론에 떠밀려 법안을 졸속 처리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식당 안전 관리까지 원청업체 책임?

여야는 이날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산안법 개정안 중 △사망사고 발생 때 사업주 처벌 강화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범위 확대 등에 합의했다. 임이자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자유한국당)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간사 등은 브리핑을 통해 “여야의 이견이 많이 좁혀졌다”며 “26일 다시 소위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산안법 일부를 개정하는 게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안대로) 전체를 개정하기로 가닥을 잡았고 26일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합의한 내용 중 경제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고 책임을 원청업체에 지우자는 조항이다. 현행 산안법은 하청업체 근로자가 추락·붕괴 등의 위험이 있는 특정 장소에서 작업할 때만 원청업체가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 이 범위를 넓히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고용부 개정안은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생긴 안전사고를 대부분 원청업체가 책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개정안대로 통과되면 식당과 조경, 경비, 통근버스 관련 업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까지 도급을 준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산재 발생 가능성이 낮고, 도급을 받은 협력업체가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인데도 이를 원청업체에 떠넘기는 것은 문제라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도급을 준 업체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는데도 정부의 산안법 개정안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며 “현장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도급을 준 원청업체와 도급을 받아 직접 관리해야 할 협력업체에 똑같은 책임을 부여한 것도 논리적으로도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독일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도급을 준 업체와 업무를 실제 집행하는 업체의 책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추세다.

사망사고 발생 때 원청업체 사업주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경제계는 걱정하고 있다. 사업주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는데도 모든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라는 것은 무리라는 점에서다. 경제계 관계자는 “사업주가 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현행 산안법 및 관련 규정에 있는 583개 의무를 모두 지켜야 한다”며 “이들 규정을 사업주가 완벽하게 지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사고가 나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을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경총 등 경제단체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안전 관련 사업주 처벌 조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최고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다. 미국과 일본은 산안법 위반에 따른 사업주 처벌 수위가 각각 최고 6개월 미만 징역형, 6개월 이하 징역형이다. 독일과 영국 등 다른 국가도 1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지 않는다.

유해작업 도급 금지 도입 우려

경제계는 여야가 26일 합의할 사안이 더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정부안에 포함된 △유해작업 도급 금지 △중대재해 발생 때 고용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 가능 등의 조항이 도입되면 기업 경영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가 ‘유해작업’을 협력업체에 맡기는 걸 금지하기로 합의하면 당장 많은 협력업체가 일감을 얻지 못해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유해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에 일을 맡기지 않고 원청업체가 다 떠맡을 경우 사고 위험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부 장관이 중대재해가 난 사업장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추진에 대해서도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 개정안은 산업재해가 재발할 우려가 있거나 산재 예방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재발 우려’나 ‘불가피한 경우’ 등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인 작업중지 명령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대기업 사업장에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지면 협력업체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완성차업체가 작업중지 명령을 받아 특정 사업장의 공정만 멈추더라도 사업장 전체의 생산이 중단되고, 수많은 협력업체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총 관계자는 “단 한 번의 작업중지 명령만으로도 최소 수천억원대 매출 손실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김소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