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신약 개발비용 회수 어렵고
무역마찰 빌미 될 수도
'참조가격제' 도입
신약개발·상품화 뒷받침해
제약산업 경쟁력 높여야"
김원식 < 건국대 교수·경제학 >

그러나 앞으로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차별적일 수도 있는 우리나라 약가 정책과 관련한 재협상 요구는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고령사회 초입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약산업이 한·미 간 무역 역조를 해소할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국민건강보험의 진료비는 연평균 8% 이상 고속 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장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문재인 케어’와 더불어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보장 욕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혁신신약의 보험 적용 요구는 탄력적으로 더 커질 것이다.
치료 재료로서 독점력이 강한 혁신신약은 사실상 부르는 것이 가격이 된다. 다국적 제약사와 보장성을 요구하는 환자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될 독점구매자 건강보험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불리한 위치에서 혁신신약의 가격을 협상할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2015년 기준 한국 제약산업은 미국과 8.5 대 1의 무역 역조 상태다. 그런데도 미국이 약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약가를 높게 책정하면 수요가 줄어 수입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이나 희귀질환과 관련된 혁신신약은 없어서는 안 될 독점상품이어서 보험약가가 유리하게 정해지면 상당 기간 수익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실제 거래가격의 가중평균으로 결정되는 실거래가 제도하에서는 사실상 전국 어디서나 의약품이 같은 가격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제약사가 매출을 극대화하려면 건강보험공단과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게 최선이다.
건강보험 지출 총액에서 약제비 비중은 낮아지고 있지만 이는 진료비 상승률이 워낙 높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약제비 절대액은 지난 10년간 거의 두 배 늘었다. 앞으로 고령인구가 더 늘면 약제비 지출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건강보험의 약가 억제 정책으로 인해 국내 약품의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데 이 가격이 해외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신약은 사정이 더 나쁘다. 글로벌 혁신신약은 개발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특허기간 내 또는 특허 가치가 유지되는 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 제약산업은 자동차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미래의 핵심 산업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제는 제약산업이 보험약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혁신신약에 대해서는 기존 ‘실거래가 상환제’의 틀에서 벗어나 ‘참조가격제’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약값을 조정할 수 있게 하고, 국민건강보험은 일정 금액만 상환하면서 나머지는 환자 본인이 부담하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신약 부문은 독점성이 강하지만 비슷한 효능의 약품 간 경쟁이 심하다. 또 경쟁으로 인해 독점력이 일정 기간 내 소멸되는 특성이 있어서 약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매기지는 못한다. 이제는 제약사도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지만 환자들도 싼값에 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게 해야 한다.
정부는 국산 신약 우대조항을 폐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국내 제약사들이 혁신신약으로 다국적 제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신약 개발과 상품화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에 무역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국내 제약산업을 보호할 의무나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오직 국민건강 개선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제약사들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