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 불법성 논란도 제기...내년 1월에야 본격 공판 시작될 듯
이번 재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한 첫 번째 정식 재판이어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40석 이상의 방청석이 가득차 서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변호인과 검찰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며 치열한 공방전을 예고했다.
1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임 전 차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날이어서다. 임 전 차장은 일제 강제징용소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에서 사법행정권을 부적절하게 사용해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지난달 14일 기소됐다.
◆증거기록 공개 놓고 검찰과 변호인측 ‘설전’
통상 특정 피고인에 대한 증거기록은 공판이 열리기 전 변호인이 모두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피고가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임 전 차장측이 전체 수사 기록의 약 40%만 열람하도록 검찰이 제한했다.
검찰은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검찰이 기소를 예정하고 있는 피의자가 여럿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기록을 사전에 노출하면 향후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이 같은 증거기록 열람 제한으로 인해 공소사실의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전체 기록은 20만 페이지가 넘는데 그 중 약 7만 페이지 밖에 볼 수 없는 처지라고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증거자료를 검토하지 못했기에 공소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의견이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술과 서류를 종합해 봐야 사건이 정리되는데 일부만 봐서는 전체 그림을 파악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방어권 행사에 지장 없도록 광범위한 열람등사를 허용한 것”이라며 “(열람하도록 한 자료는) 확인도 안하고 전체 공개만 주장한다”고 반박했다.
◆공소장 불법성 놓고도 설전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의 공소장 자체가 불법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이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반해 재판 자체가 기각돼야 한다는 변호인측 주장이다. 공소장일본주의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해야 하며 기타 서류나 증거물을 제출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법관이 다른 자료를 보고 재판에 예단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243쪽에 달하는 공소장에서 문제가 된 대목은 검찰이 임 전 차장의 범죄 혐의 약 30개를 4개의 제목을 달아 분류한 부분이다. 임 전 차장 측 오승원 변호사는 “공소장을 보면 공소사실에 대해서 큰 글씨로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등의 제목을 붙였다”며 “이는 법령이 요구하는 이외의 사실이나 검찰의 의견과 평가를 광범위하게 나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복잡한 사안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수년에 걸쳐 여러 동기와 배경, 목적에 의해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은밀히 이뤄진 범행”이라며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범행마다 동기와 배경을 기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공소사실에 제목을 달아 특정한 것이 오히려 피고인의 방어 범위를 정해줄 수 있다는 반론도 덧붙였다.
◆‘양승태 대법원장’ 정리된 이후 본격 공판 열릴 듯
양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다음 공판준비기일을 19일 오후 2시로 지정하며 변호인측에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를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변호인 측의 공소장 일본주의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공판준비기일이 추가로 열리더라도 본격적인 공판절차는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가능할 전망이 많다.
검찰이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을 기소하고,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조사를 마칠 때까지 증거기록 열람이 어렵기 때문이다. 증거기록을 열람하더라도 20만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변호인 측이 숙지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기까지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법조계에서는 내년 1월에야 본격적인 공판 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