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택 티움바이오 대표
27년 신약 연구개발 '한우물'
SK케미칼 신약개발 부서 분리
혈우병·폐섬유증 치료제 등 신약 파이프라인 6종 개발중
자궁내막증 치료제 후보물질
다국적 제약사 기술수출 협상중
내년 코스닥 시장 상장 추진
김훈택 티움바이오 대표(52)가 꼽는 바이오 기업의 성공 조건이다.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사람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연구원들이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고 몰입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성공 확률이 낮은 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직원 27명의 바이오벤처지만 직원들이 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직원이 아이디어를 낸 신규 연구과제에는 제출 마감시한을 두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일정에 쫓기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혈우병 등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의 글로벌 강자를 꿈꾸는 이 회사는 창업 3년 만에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계약 체결을 눈앞에 두는 등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 품 벗어나 홀로서기
티움바이오는 2016년 12월 SK케미칼의 신약개발부서가 스핀오프한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신약 개발 부서인 혁신연구개발(R&D)센터를 이끌던 김 대표가 연구원들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김 대표는 “연구 중이던 개발 과제를 반드시 꽃피우겠다는 각오로 연구자들이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신약 개발 경력에서 국내서 손꼽히는 연구자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1990년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연구소에 입사한 이후 27년간 신약 연구개발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국내 1호 신약인 항암제 ‘선플라’를 시작으로 천연물 신약 1호 ‘조인스’(관절염치료제), 발기부전 치료 신약 ‘엠빅스’,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 등 SK케미칼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신약 기술수출과 글로벌 허가 등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며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신약을 개발할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티움바이오의 출발은 순탄한 편이다. 스핀오프 당시 SK케미칼에 있던 신약 개발 연구장비를 양수받아 중견 제약사를 능가할 정도의 연구환경을 갖추고 있다. 투자자금도 넉넉히 확보했다. 벤처캐피털 등에서 지금까지 받은 투자액은 355억원에 이른다. 김 대표는 “30년 가까운 신약 개발 노하우를 가진 SK케미칼의 신약 개발 부서가 모태다보니 벤처캐피털이나 다국적 제약사 등이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 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강자 되겠다”
티움바이오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폐섬유증 치료제 ‘NCE401’, 자궁내막증 치료제 ‘NCE403’, 혈우병 치료 바이오신약 ‘NBP604’와 ‘NBP611’ 등 모두 6종이다. 이 가운데 혈우병 치료 파이프라인이 절반인 3종이다. SK케미칼 시절부터 축적해온 혈우병 치료 신약 개발력을 더 키워 이 분야의 세계적 강자가 되겠다는 게 목표다. 다국적 제약사 CSL, 바이엘 등이 주도하는 글로벌 혈우병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SK케미칼 시절 김 대표는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를 CSL에 기술수출한 경험이 있다. 그는 “2000년부터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해온 노하우와 창의성을 내재화해 경쟁력을 갖췄다”며 “동물세포 배양을 기반으로 한 제제기술로 차별화한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혈우병 파이프라인은 내년부터 임상을 본격화한다. 중화항체 혈우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NBP604는 내년 임상 1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신규 파이프라인인 NBX001은 차세대 혈우병 치료제로 개발 초기 단계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파이프라인은 NCE403이다. 1일 1회 복용하는 알약으로 개발 중이다. 독일에서 3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1상을 마무리하고 하반기에 2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NCE403은 생식샘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GnRH) 작용제다. 성호르몬 에스트라디올의 분비를 막고 GnRH 활동을 억제한다. GnRH 작용제로는 애브비의 ‘앨라고릭스’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마이오반트사이언스 옵스이바 등도 유사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김 대표는 “앨라고릭스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복용 횟수도 하루 2회에서 1회로 줄인 것이 NCE403의 강점”이라며 “다국적 제약사들과 기술수출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 능력 곧 입증할 것”
폐섬유증 치료제 NCE401은 티움바이오에는 ‘자존심’ 같은 존재다. 면역항암제로도 동시 개발하고 있는 NCE401은 과거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2002년부터 개발에 공을 들여온 파이프라인이었지만 실패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글로벌 상위 제약사들의 전쟁터인 항암제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서다. 김 대표는 “실패 리스크를 극복하면 오히려 기회가 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 개발을 다시 시작했다”며 “회사의 개발 역량을 입증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NCE401은 암을 일으키는 수용체인 TGF-b 저해제다. 옵티보 키트루다 등 기존 면역항암제가 암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인 PD-1, PD-L1 등을 겨냥한 것과는 다른 기전의 항암제다.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국내 바이오벤처 테라젠이텍스의 자회사인 메드팩토 등이 TGF-b 기반의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티움바이오는 전임상을 끝내고 내년 임상 1상에 나설 계획이다. 김 대표는 “FDA의 허가를 받은 기존 약물들은 폐 섬유화의 진행을 늦춰주는 수준이지만 NCE401은 섬유화 억제 효과가 뛰어나고 치료 효과까지 있다”며 “다국적 제약사들이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기술수출 전략으로 성장”
티움바이오의 성장 전략은 명확하다. 희귀질환 분야에 집중해 임상 1, 2상 단계에서 다국적 제약사 등에 기술 이전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벤처기업이 임상 3상까지 직접 도맡아 상업화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며 “기술 이전으로 로열티 수입을 극대화하면서 성장 기반을 닦을 것”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기업부설연구소 내에 사업개발(BD)부서를 두고 있다. 기술 이전 전략을 짜고 관련 실무까지 맡는 조직이다. 김 대표가 BD부서를 연구소 내에 둔 데는 이유가 있다. 상업성 없는 연구과제를 걸러내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포기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에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의 방식으로 상업화 가능성을 가늠한다. 연구 도중이라도 상업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될 때는 미련없이 정리하는 게 원칙이다.
상업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는 김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글로벌 인맥이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는 “BD부서는 물론 연구원들에게도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장 동향을 수시로 챙기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기업의 출발”
이 회사의 사무실 벽에는 직원들의 팝아트초상화가 빼곡히 붙어 있다. 그림 밑에는 각자의 소망이 적혀 있다. ‘10년 후 연구소장을 꿈꾸며’ ‘이탈리아 워크숍과 요트 낚시를 꿈꾸며’ 등등. 직원들이 늘 자신의 꿈을 되새기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공간이다. 김 대표는 “직원들 때문에 회사가 존재하고, 일을 할 수 있다고 평소 생각한다”며 “단순히 월급쟁이로 일하지 않고 즐기면서 도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직원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코칭하는 것도 김 대표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그는 “직원들과 수시로 면담하면서 개개인의 성격과 장단점을 파악하려고 한다”며 “창의성 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근무 여건을 조성해주는 게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라고 했다. 업무 방식도 직원들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직원들이 신규 과제 아이디어를 내면 가급적 실행할 수 있게 해주고 과제 마감 시한을 따로 두지 않는다. 맘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시간에 쫓겨 빵집에서 빵 굽듯 나온 아이디어로는 차별화된 후보물질 개발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3개 프로젝트가 신규 과제로 진행 중이다.
내년 코스닥 상장 추진
이 회사는 직원 모두에게 스톡옵션을 준다. 미래이익공유제라는 독특한 성과보상제도도 있다. 좋은 개발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발명 보상을 하는 식이다. 김 대표는 “기술 이전 등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면 해당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내년 기술특례 상장도 추진한다. 김 대표는 “개발력이 아닌 마케팅이나 영업력에 기대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며 “국내외에서 혁신신약 개발사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개발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