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이오·제약업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낭보가 들려온다. 세계 1호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셀트리온 램시마의 연간 처방액이 1조원을 넘었다. 120년 역사의 한국 제약산업에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한미약품 이후 2년 넘게 뜸했던 신약 후보물질 기술수출 물꼬도 트였다. 지난달에만 다섯 건의 기술수출 계약이 이뤄졌다. 이달에도 서너 건의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 바이오 회계기준 강화 등으로 주춤하던 바이오 열풍이 다시 거세질 분위기다.

난립하는 복제약 딜레마

이런 낭보에도 바이오·제약업계는 잔칫집 분위기가 아니다. 악재가 한둘이 아니어서다. 대표적인 게 제네릭(복제약) 규제 강화다. 정부는 제네릭이 오리지널약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를 확인하는 생동성시험 요건을 강화할 계획이다. 여러 제약사가 비용을 분담해 공동 시험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가 제네릭 양산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터진 발사르탄 사태가 계기가 됐다. 발암물질이 발견된 중국산 발사르탄을 원료로 쓴 제네릭은 69개에 달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고혈압 약은 모두 2690개였고, 대부분이 제네릭이었다.

제네릭은 양날의 칼이다. 약값을 떨어뜨려 국민에게는 이득이다. 하지만 단가를 낮추려 경쟁하다 보면 값싼 원료를 쓸 수밖에 없고 제2, 3의 발사르탄 사태를 막기 어렵게 된다. 제네릭 난립이 자칫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악재는 보험약가 인하다. 정부는 제네릭 최고가 기준을 낮추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오리지널 약값의 53.55%인 제네릭 최고가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제네릭 허가 기준을 강화하면서 약가까지 낮춰 제네릭 출시를 억제하는 양동작전을 펴겠다는 의도다. 국민이나 건강보험 재정에는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국내 제약산업에는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정부의 일괄 약가 인하 때도 제약업계는 매출이 평균 10%가량 줄었고 회복에만 꼬박 2~3년 걸렸다.

AI 등으로 혁신 돌파구 찾아야

한국 제약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신약은 고작 30개뿐이다. 더구나 매출 1000억원을 넘은 국산 신약은 전무하다. 기껏해야 수백억원 수준이다. 완제의약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는 353곳이지만 연간 생산액이 1000억원을 넘는 곳은 42곳밖에 안 될 만큼 영세하다. 이렇다 보니 국내 제약시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놀이터다. 지난 3분기 처방액 기준으로 톱10에 든 국산약은 한 개뿐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제약산업 지원은 위축될 처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미국 정부가 자국 제약사에 대한 차별을 없애라고 요구하면서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여 신약 연구개발(R&D) 장려를 위해 2년 전 도입한 혁신신약 약가 우대제도를 사실상 폐기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각종 국산약 우대 정책이 존폐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제약업계가 찾은 대안은 협력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축이 돼 인공지능(AI) 신약개발 지원센터, 대학병원 등과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협의체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일 원희목 회장이 협회 사령탑에 복귀했다. 지난 1월 사임할 때까지 남다른 추진력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원 회장에게 업계가 다시 수장직을 맡긴 것은 혁신과 변화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협력성장 모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