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주간 스위스 현지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어 자산을 맡기는 이탈리아인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라 레푸블리카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재정적자를 대폭 늘린 내년도 예산안을 고집하면서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는 까닭에 금융시장 불안 등 위기감이 커져서다.

EU는 규정에 어긋나는 예산안을 제출한 이탈리아 정부에 채무위기 발발 가능성을 연일 경고하고 있다. 금융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안전자산인 독일 10년물 국채와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 차이(스프레드)는 2013년 4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불안감을 느낀 이탈리아 부유층들이 안전한 스위스 은행을 찾아 국경을 넘는 통에 은행들의 업무도 가중되고 있다. 은행들은 스위스에 거주하지 않는 이탈리아인에게는 계좌 개설 약속조차 잡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의 내년 재정적자 전망치를 당초 국내총생산(GDP) 대비 1.7%에서 2.9%로 대폭 상향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소득 도입, 연금 수급연령 하향 등 재정 지출을 늘리는 계획이 예산안에 포함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성명을 통해 “EU는 이탈리아의 구조 개혁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이탈리아는 EU의 문제아가 아니다”고 말했다. 조반니 트리아 재정경제부 장관은 13일까지 EU가 예산안 수정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데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리아 장관은 “EU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까닭은 이탈리아 내년 예산안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재정지출을 대폭 늘려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면 공공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이탈리아 정부의 주장이다. 이탈리아의 재정부채는 GDP 대비 131%로 유로존 국가 중 2위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