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토론'서 쏟아진 대학총장들의 자성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평가에만 매몰된 한국 대학…미래 인재 육성에는 '나 몰라라'
'학생 성장' 중심으로 목표 짜야
윤증현 前 기획재정부 장관
"하버드대 총장은 13년 이끌어…혁신은 장기적 리더십에서 나와"
교수는 토론 중재자로 변신 중…'성과 평가시스템' 재구축해야
“이미 대학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는 무수히 쌓여 있다. 다 아는데 왜 대학은 변하지 않을까.”(남궁문 원광디지털대 총장)
국내 대학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대학 총장들과 교육 개혁을 부르짖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7일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8’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토론 중심 세션 ‘대학혁명-총장들의 끝장토론’에서다. 200명의 청중이 강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총장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대학은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낙오자가 된다”며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션의 좌장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았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과 민경찬 명예특임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이어 이영무 한양대 총장, 오덕성 충남대 총장, 신성철 KAIST 총장, 이기우 인천재능대 총장, 남궁문 총장 등 5명의 대학 총장이 토론했다. 토론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4시간 동안 이어져 역대 인재포럼 최장시간 세션으로 기록됐다.
“우리 대학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가”
연사들은 한국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정체성 실종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이 대학이 길러내야 하는 인재의 정의부터 바꾸고 있는 시대임에도 대학들이 제대로 된 고민도,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민 명예특임교수는 “한국 대학들의 운영 초점은 어떻게 하면 교육부 및 국내외 대학평가기관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에만 매몰돼 있다”며 “입학 성적만 신경쓸 뿐 졸업자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사회에 나가는지엔 관심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교육기관은 존재 의미가 없다”며 “대학 내 자원 배분부터 교수들의 강의방식까지 대학의 모든 것을 그들이 키워내는 학생의 성장이란 목표를 중심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정 소장은 “2000여 명의 서울대 교수 중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해야만 높은 학점을 받는다고 얘기하는 이는 없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대학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만 난무할 뿐 ‘실행’은 없는 경직적인 대학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어떤 논의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궁 총장은 “한국 대학은 더 이상 해외에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없다”며 “개혁 방안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성과를 재정의하라”
참석자들은 기술혁명 시대 대학의 최우선 과제를 ‘성과 평가 시스템’의 재구축에서 찾았다. 새로운 학과나 입시 전형을 만드는 등의 임기응변식 대책은 ‘대학혁명’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신성철 총장은 “교수의 역할은 단순한 티칭(가르치기)에서 토론의 중재자이자 촉진자 그리고 멘토로 변화하고 있다”며 “논문의 개수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지금의 시스템으론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영무 총장 역시 “한국 사회는 주관적인 평가를 용납하지 않기에 객관적인 논문의 숫자만을 평가 지표로 강제한다”며 “지금의 시스템으론 교수들은 곁가지 연구에만 매달리고 교육엔 무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 운영만큼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어떤 조직이든 혁신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리더십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민 명예특임교수는 “4년의 총장 임기, 거기에 맞춰진 보직 교수들의 임기론 어떤 장기적 개혁도 추진할 수 없다”며 “대학의 거버넌스만 바꿔도 우리 대학은 진일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토론 좌장인 윤증현 전 장관은 “하버드대 총장은 13년, 독일 총리는 평균 9년의 리더십을 갖고 조직을 이끌고 나간다”며 “대학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됐다. 오덕성 총장은 “앞으로 대학 졸업생들은 평균 6번 직장을 바꿀 것이고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며 “대학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그저 새로운 기술이 아닌, 깊이 있는 사고력과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라고 말했다. 이기우 총장은 “성공하는 인재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사랑하고 직업인으로서 올바른 품성을 지녔다는 것”이라며 “이런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 대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