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찾아주다 보니 연주회까지 열게 됐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신당동 사랑의달팽이 사무실에서 만난 김민자 회장(사진)은 “9일 열리는 ‘클라리넷 앙상블 연주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무대에 서는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30여 명으로 구성된 앙상블이다. 사무실 한쪽에는 아이들의 연습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김 회장은 “듣지 못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회복해 훌륭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덧붙였다.

김민자 사랑의달팽이 회장 "듣지 못했던 아이가 회복해 연주할 때 가슴 벅차"
사랑의달팽이는 선천성 청각장애아에게 수술비와 재활 치료를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지금까지 779명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2826명에게 보청기를 지원했다. 국민 배우 최불암 씨의 부인이자 1970년대 톱스타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김 회장은 2006년 초대 회장을 맡은 이후 계속 사랑의달팽이를 이끌고 있다. 30대 후반 찾아온 이명과 귀통증으로 평생 시달려온 김 회장은 “귀가 불편하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 이 어려운 일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치의로부터 치료받던 중 청각장애인 지원 단체를 세우겠다는 말을 듣고 사랑의달팽이와 인연을 맺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육안으로는 구분이 잘 안 돼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워요. 우리나라에는 32만 명의 청각장애인이 있는데, 그중 일부는 수술시기를 놓쳐 재활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면 사회에서 점차 고립되기 쉽죠. 그들을 사회로 끌어내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사랑의달팽이는 수술 지원뿐 아니라 재활 치료에 드는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수술 뒤엔 곧바로 온전한 사람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 2~3년에 걸친 재활을 거쳐야 비장애인과 비슷한 수준의 청각 및 어휘 구사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사랑의달팽이는 재활 치료의 한 방법으로 클라리넷을 활용한다. “클라리넷을 연주할 때 주로 사용하는 음역대는 인간 목소리 음역대와 비슷하다고 해요. 아이들의 듣기 훈련에 도움이 되고 자신감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음정을 맞추지 못하고 음 이탈도 많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수준급으로 올라섰죠.”

김 회장은 가장 보람찼던 순간으로 클라리넷 연주로 재활하던 아이가 음대에 입학한 때를 꼽았다. “클라리넷이 아이의 인생까지 바꿔놨으니 가슴이 벅찬 경험이었다”고 했다.

김민자·최불암 부부는 오랜 세월 봉사를 이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불암 씨는 198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어왔다. 이들 부부는 자녀들에게 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직접 봉사활동을 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부모가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홍윤정/사진=신경훈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