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해도 원전산업 경쟁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한국전력기술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관련 회사로 자리를 옮긴 A씨는 이직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5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UAE에 한국 출신 전직자가 25~30명 있는데 작년 이후에만 20명 정도가 왔다”며 “확실히 정부 정책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한국선 원전 일감 언제 끊길지 불안불안…인력유출, 이제 시작에 불과"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때부터 ‘탈(脫)원전’ 정책 기조를 천명하면서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새로 짓던 원전 6기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신한울 1·2호기 등 신규 원전 5기는 기존 방침대로 건설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신규 원전이 아직 있으니 최소 몇 년간은 일감이 유지되지 않을까’라고 묻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전기술이 담당하는 설계 업무는 신규 원전에 관한 것도 내년이면 거의 마무리된다”며 “그 이후엔 일감이 끊기는 셈이어서 일선 인력들의 불안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인력들이 아직까지는 힘들지만 버텨보자는 사람이 많고 중동 외에 중국 등에서의 스카우트가 본격화하지 않아 해외 이직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내년 이후부터는 확실히 이직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출 확대를 통해 산업 경쟁력과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정부 목표에도 회의적이었다. 한국 원전 경쟁력이 강하다지만 아직까지 수출 실적은 한 건뿐이고 입찰 때 경쟁이 치열해서 수출을 늘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확고한 탈원전 기조가 수출 입찰 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A씨는 “원전 수출도 핵심 인력과 부품·기자재가 어느 정도 확보돼야 가능한데 앞으로 인력 유출이 가속화하면 공급 사슬이 깨져 수출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원자력업계 종사자이긴 하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 자체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원전보다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추세는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가 너무 급격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앞으로 온난화에 따라 석탄화력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고 신재생에너지 공급 능력이 예상만큼 확대되지 않으면 원전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며 “이런 것에 대비해 최소한 신규 원전은 모두 예정대로 건설하는 정도로 탈원전 속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