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할은 단순히 말이 통하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융합’의 역할도 합니다. 신세대와 윗세대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생각과 감정의 교류가 단절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남기심 前 국립국어원장 "언어는 세대와 계층 아우르는 '융합' 역할 해야"
9일 한글날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열린 ‘2018 주시경 학술상’ 시상식장에서 만난 남기심 전 국립국어연구원장(사진)은 언어의 융합 기능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 전 원장은 이날 통일국어문법을 정립하고 국어기본법을 세우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시경 학술상’을 받았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을 기리는 이 상은 국어연구와 한글학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국어학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연세대 국어학과를 졸업한 남 전 원장은 계명대를 거쳐 1977~2001년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교 문법의 체계를 단일화한 이른바 ‘통일 문법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고 한글맞춤법 등 국어정책 방향 설정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국어학회·한국언어학회 회장을 맡았고 2001~2006년 제6대 국립국어연구원장을 지냈다. 녹조근정훈장, 보관문화훈장, 일석국어학상 등을 받았다.

남 전 원장은 학계에서 대중과 소통을 강조하는 언어 순화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립국어원장 재직 시절 대중이 실생활에서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순화어 보급에 힘썼다. 댓글(리플), 누리꾼(네티즌), 참살이(웰빙) 등 순화어를 정착시킨 것도 그다. 대중이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표준 문법에 반영하는 등 유연한 언어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언어에는 대중의 감정이 함께 녹아들어 있어요. 소수의 지식인이 아무리 좋은 순화어를 정해 공표한다고 해도 감정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널리 퍼지기 힘듭니다. 매년 발표하는 순화어 중에서도 대중의 실생활에 녹아들어가는 건 소수에 그칩니다.”

그는 “언어정책에 앞서 순화어 보급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어떤 맥락에서 특정 순화어들을 받아들이는지를 분석해야 효과적인 순화어 개발과 보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남 전 원장은 젊은 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 축약어 등 새로운 언어 현상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는 “시대가 변하는 만큼 언어도 바뀌는 게 당연하다”며 “변하지 않은 언어는 오히려 퇴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세대 간 언어가 달라지면서 대화가 어려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바른 언어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융합의 관점에서 남북한 언어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분단 상황이 길어지면서 남과 북의 언어가 독자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영어와 독일어같이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될 수도 있죠. 남북의 언어를 총정리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이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