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들 흡연 '오명'으로 여기며 니코틴·대마초 투자
투자결정 땐 "금연보조" "불안완화" 건강제품처럼 홍보


미국 전자담배 시장의 73%를 점유하고 있는 '줄(Juul)'.
USB 포트로 충전하는 줄은 다양한 맛과 함께 '쿨하다(멋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 10대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담배 둘러싼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들 이중성 빈축
청소년들은 줄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을 찍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앞다퉈 올린다.

줄을 핀다는 의미의 '줄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10대의 전자담배 흡연이 심각하다고 느낀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9월 줄의 유행을 '전염병'이라고 지칭하면서 줄과 다른 전자담배 제조사들에 "미성년자에게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달 초에는 청소년 타깃 광고 기획 혐의로 줄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7일 줄 같은 전자담배 회사가 성공한 데는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VC)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12억5천만 달러의 투자 라운드를 성사시킨 줄은 창립 3년 만에 160억 달러(18조 원)의 기업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성공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다.

NYT는 "법적 회색 지대에 있거나 윤리적으로 모호한 업체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온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기술이 인간의 모든 삶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묘한 윤리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줄에 대한 투자를 "정말로 추악하다"고 비판했던 터스크 벤처스는 대마초 관련 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회사인 CB 인사이츠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가 올해 대마초를 합법화한 이후 벤처 캐피털의 대마초 관련 스타트업 투자는 총 11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두 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VC가 니코틴과 대마초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악덕' 제품을 건강 웰빙 제품인 것처럼 술수를 쓰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찰스 리버 벤처스의 사아르 구르 캐피털리스트는 "대마초 관련 기술은 임상적 이점을 갖고 있어 니코틴 스타트업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줄의 홍보 책임자인 매트 데이비드는 "우리의 목표는 태우는 (궐련)담배를 제거하는 것"이라며 "줄을 시도한 흡연자 가운데 50%가 성공적으로 전자담배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니코틴 껌 제조업체 루시는 투자자 발표에서 '에너지', '경계심' 같은 니코틴의 이점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포함했다가 나중에 이를 삭제했다고 NYT는 전했다.

루시에 투자한 그레이크로포트 파트너스의 투자자 테디 시트린은 "처음엔 니코틴 회사에 대한 투자가 회사에 오점이 될 것으로 우려했지만, 금연을 돕는다는 점을 높이 사 투자하게 됐다"고 말했다.

루시의 CEO 데이비드 렌텔은 "전자담배와는 달리 니코틴 껌은 강한 니코틴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 때의) 행복감이 덜하다"면서 "우리가 10대 중독성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8천8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로' 역시 '금연 보조제'라는 명목으로 니코틴 껌을 팔고 있다.

줄이나 루시와 같은 화려한 마케팅을 하지는 않지만, 박스에 '제로(0)'라는 이름으로 금연을 강조하면서 건강 개선 제품임을 내세우고 있다.

NYT는 "최근 40명의 벤처 투자자 인터뷰에서 단 2명만이 동료들 가운데 흡연자를 식별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실리콘밸리 VC 사회에서 흡연은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꺼리는 오점"이라며 "그런데도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자담배나 대마초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는 휴식, 불안 완화, 운동 후 회복을 위한 건강제품이라는 개방된 생각을 가진다"며 실리콘밸리 VC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