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기초과학 분야에선 일본이 'G2'라는데…
지난 3일까지 2018년도 노벨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등 과학부분 수상자 발표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일본은 올해도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혼조 다스쿠(本庶佑) 교토대 특별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되며 기초과학 강국의 위상을 과시했습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어떻게 과학강국이 됐는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올해까지 16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국적별 역대 노벨상 수상자 수로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5위지만 2000년대 이후로만 보면 미국에 이은 2위입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는 ‘주요2개국(G2)’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입니다.

이처럼 일본이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원인으로는 △과학자들의 순수연구 중시 풍조 △긴 안목의 장기 연구프로젝트 추진 △국가차원의 적극적인 연구지원 △100년이 넘는 연구역사로 축적된 지식과 넓은 연구풀 등이 주로 지목됩니다.

우선 일본이 과학 분야 노벨상을 휩쓰는 원인으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매진하는 일본인 특유의 ‘한 우물 파기’ 장인정신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교수도 1일 저녁 열린 기자회견에서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결과도 10년 후엔 10%도 남지 않는다”며 “쓰여 있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는 호기심과 내 머리로 생각해서 납득이 갈 때 까지 연구를 한 점이 인정을 받은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노벨상 수상 근거가 된 ‘면역관문수용체를 발견 및 기능 규명’연구도 부작용이 작고 효과가 큰 면역항암제를 개발하는 계기가 됐지만 처음부터 암 치료를 목적으로 연구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포에 대한 기초연구를 하던 중 우연히 면역관련 특별 역할을 하는 분자를 발견했는데 ‘의외의’ 연구결과에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를 지니고 실험을 진행한 것이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 혼조 교수는 평소에도 “의외의 데이터야말로 재미있는 것”이라며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경향은 소수의 과학자만이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과학계에 널리 퍼진 풍조이기도 하다는 평가입니다. 마쓰모토 히로시 일본 이화학연구소 이사장은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타겠다고 노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연구 자체에 의미를 두고 공부하다보면 노벨상은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라며 과학자들이 연구의 순수성을 지키는 문화가 유지되는 점을 일본이 과학 분야 노벨상을 휩쓰는 이유로 꼽았습니다.

실제 중성미자 발견을 위해 폐광이었던 가미오카 광산의 지하 1000m 실험시설 가미오칸데에서 연구를 거듭한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2002년 물리학상 수상), 시마즈제작소 회사원으로 레이저를 활용한 질량분석 연구에 천착했던 다나카 고이치(2002년 화학상 수상), “흙속의 미생물을 모으기 위해 죽을 때까지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겠다”고 말한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대 명예교수(2015년 생리·의학상 수상) 처럼 다른 일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연구에만 정진한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과학계가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시각에서의 연구가 활성화된 점도 지목됩니다. 일본 기초연구의 산실이라는 이화학연구소의 유지 가미야 명예연구원은 “일본에선 결과물이 30~100년 뒤에야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연구가 적지 않다”며 “다수의 연구자들이 ‘고교 교과서에 실릴 연구’를 목표로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화학연구소 연구진이 2016년 발견한 113번째 원소(니호니움(Nh)) 연구 역시 20년 이상 장기프로젝트 결과물입니다.

‘대를 이은’연구도 적지 않습니다. 2002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와 2015년 물리학상 수상자 가지마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모두 중성자 연구를 위한 연구시설 가미오칸데에서 사제지간의 연을 맺은 인물들입니다.

국가차원에서도 1970년대 이후 장기간에 걸쳐 기초연구 지원 작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2년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는 1997년에 처음으로 국가로부터 과학 연구비를 지원받은 뒤 노벨상을 수상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연구비를 받아왔습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는 과학기술을 외국에서 단순히 수입하는 수준을 넘어 기초기술을 자체적으로 육성키로 결정한 뒤 꾸준히 막대한 연구자금을 쏟아 부었습니다. 1996년부터 5년 단위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세워 대규모 연구개발(R&D) 담당 기관들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5년간 국내총생산(GDP)의 1%인 26조엔(약 255조8000억 원)을 투입하는 제5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과학계가 상대적으로 응용과학보다 기초과학 연구진이 풍부한 편인 점도 눈에 띕니다. 일본 주요 대학과 연구소, 기업 등에서 30대 우수 인재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 있습니다. 주요 연구기관에선 대학 조교수보다 많은 보수로 젊은 연구자를 적극 끌어 모으는 기초특별연구원제도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학 내 연구와 교육도 철저하게 기초와 원리 파악에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주요 연구기관마다 다양한 기초학문 분야 간 긴밀한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입니다.

이 같은 결과, 일본은 매년 많은 수의 노벨상 후보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세포 내에서 단백질의 품질 관리를 담당하는 ‘세포체 스트레스 대응’을 규명한 모리 가즈토시 교토대 교수,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처음으로 발견한 엔도 아키라 도쿄 농공대 교수, 60억 년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광격자(光格子)시계를 개발한 가도리 히데토시 도쿄대 교수, 자석의 성질을 지닌 특수한 물질을 연구한 도쿠라 요시노리 이화학연구소 센터장, 분자의 자기조직화 현상을 연구한 후지타 마코토 도쿄대 교수 등은 매년 노벨상 단골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 과학계를 한국은 무척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역시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지적 축적의 시기를 거친 뒤에 거둔 결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사회도 서두르지 않고 한발 한발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과학 분야 노벨상의 과실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