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3일 오전 11시13분

회사채 발행 시장이 기관투자가의 수요에 힘입어 흥행 기록을 새롭게 썼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쓴 신기록이어서 주목된다. 국내 경기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하면서 기관들이 안전자산인 채권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켓인사이트] 경기 비관론에…회사채 '흥행 新기록' 행진
3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사전 청약) 경쟁률은 평균 3.9 대 1로 나타났다. 29개 회사가 실시한 3조3800억원어치 회사채 공모에 13조1800억원 규모의 기관 자금이 참여했다. 2012년 4월 수요예측 제도를 처음 시행한 뒤 월별 최고 경쟁률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지난 7월의 3.85 대 1이었다. 지난 1~9월 평균은 3.52 대 1로, 연간 기준 최초로 3 대 1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사채를 공격적으로 사들이는 건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 등 장기 투자기관이다. 최근 주요 경기지표가 악화하자 원금 손실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채권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연기금 포트폴리오(자산배분) 담당자들이 채권비중을 늘리고 있다”며 “고용지표 충격으로 비관적인 경기 전망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수는 지난 7월에 전년 동월 대비 5000명, 8월엔 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은행이 수개월 내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금리 상승폭(채권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 금리를 크게 올릴 수 있는 경제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정책 금리가 역전됐지만 당장 자본 유출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힘을 보탰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만 놓고 보면 국내 통화정책은 인상이 아니라 인하가 필요할 정도로 부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응한다고 하더라도 한 차례를 넘어서는 인상은 쉽지 않다”며 “지금 수준에서 금리가 더 오른다면 채권 저가매수에 나설 만하다”고 강조했다.

수요예측 흥행에 힘입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기업들은 애초 공시한 모집금액보다 41% 많은 4조771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지난 4월 5조8110억원 후 5개월 만에 최대다. 낮은 가격을 써낸 기관이 몰리면서 이자비용도 평균 연 2.93%로 낮아졌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이나 부도 시 상환 순위가 밀리는 후순위채권은 외면받고 있다. 지난달 동양생명과 KDB생명보험의 후순위채 수요예측 경쟁률은 각각 0.85 대 1과 0.71 대 1을 나타냈다. 신용등급이 똑같이 ‘BBB+’로 낮은 편인 폴라리스쉬핑은 수요부족 탓에 팔리지 않은 물량을 증권사들이 떠안아야 했다.

일부 기관은 금리상승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채권 비중을 늘리기 위해 변동금리 채권을 사모으고 있다. 이 덕택에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은 수요예측 시행 이후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변동금리부 원화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지난달 당초 계획보다 500억원 많은 8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이태호/김진성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