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할 무렵인 1990년 초.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큰 고민에 빠졌다. 임원들이 “더 이상 여사님을 통한 방판(방문판매)으론 지속 성장이 어렵다”며 “우리도 새로운 유통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을 잇따라 개진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수개월의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다른 회사가 한다고 우리도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또 그럴 경우 여사님들의 일자리도 날아간다”며 오히려 방판 강화를 밀어붙인 것.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방문판매원은 당시 4000명 안팎에서 1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아줌마’들은 세계 최초로 냉장시설을 갖춘 전기카트 ‘코코(cold&cool의 줄임말)’와 결합하면서 방판의 새로운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롯데제과 등 다른 식품업체들이 “우리 제품을 코코에 실어달라”고 러브콜을 보낼 정도다.
전동카트 탄 야쿠르트 아줌마의 힘… 롯데·오리온 "우리 제품도 팔아달라"
야쿠르트 아줌마가 올린 매출 高高

한국야쿠르트는 지난해 매출 1조314억원을 내며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올해 매출은 5%가량 증가한 1조800억원으로 예상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작은 내수시장을 두고 경쟁이 치열한 식품업계는 실적이 현상 유지만 해도 성공한 것으로 여긴다”며 “이런 상황에서 매출이 성장세라는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성장세는 ‘아줌마’ 조직 덕분이다. 한국야쿠르트 매출의 93%를 ‘아줌마’들이 맡고 있다.

회사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1만3000명으로 정점을 찍자 방판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2014년 12월 세계 최초의 전기식 이동형 냉장카트인 코코를 도입한 것이다. 그전까지 ‘아줌마’들은 아이스박스에 담긴 야쿠르트와 음료를 실은 카트를 손수 밀고 언덕을 오르내려야 했다. ‘아줌마’들은 회사 측에 전기카트 도입을 요구해왔다.

돈이 문제였다. ‘다니고’라는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국내 회사가 납품하는 코코의 대당 가격은 800만원 정도. 1만3000명의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지급하면 투자비만 1000억원이 넘는다. 윤 회장은 또 한번 리스크를 감수한 결단을 내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까지 9300대의 코코를 보급했다. 실적은 물론 ‘아줌마’의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2010년 월 170만원 정도였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월평균 소득이 올해 221만원으로 높아졌다.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6.8시간이다. 기본급 없이 판매대금의 24%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구조임을 감안하면, 순전히 코코의 기동성 덕분이란 평가다.

‘아줌마’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2016년 자체 설문조사 결과, 코코를 사용하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87.8%가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제품 관리가 쉬워졌다’(37.9%), ‘체력 소모가 대폭 줄어든다’(22.5%)는 이유에서였다. 코코는 해당 영업점에서 밤새 충전하면 하루 8시간을 달릴 수 있다. 언덕길도 잘 오르는데, 도입 때 급경사가 많은 서울 금호동에서 성능 테스트를 한다.

롯데 등 다른 식품회사가 손 먼저 내밀어

성과가 뒷받침되자 회사는 투자를 더 확대했다. 지난해 2월 300억원을 투입해 경기 용인시에 1만1109㎡ 규모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하루 400만 개 제품을 각 영업점 코코에 전달할 수 있는 시설이다. ‘아줌마’의 방판 위력이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자 다른 기업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6월 디저트 제품인 ‘마켓오’를 팔아달라고 요청했다. 마켓오는 ‘코코 아줌마’를 통해 지금까지 130만 개가 팔렸다. 올 들어서는 롯데제과도 ‘오트밀 퀘이커’를 코코에 싣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롯데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모바일쇼핑몰 등을 모두 갖춘 대한민국 유통의 명가”라며 “이런 롯데가 방판 즉 한국야쿠르트 아줌마의 힘을 인정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7월엔 사조해표도 ‘꽃돌김’을 들고 한국야쿠르트를 찾았다.

한국야쿠르트는 코코의 힘을 활용하는 제품들을 강화하고 있다. 콜드브루 커피와 끼리치즈 등 신선식품을 코코에 싣기 시작한 것이다. 냉장 보관된 신선식품을 길거리에서 먹고 싶어 하는 수요를 노렸다. 콜드브루 커피는 업계 최초로 로스팅 일자를 표기했다. 최근엔 ‘야쿠르트 아줌마 찾기’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도 출시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