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장아찌·삼치회… 전라도 백반의 진수 남도의 맛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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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식객' 허영만 화백
보길도·노화도 취재 동행기
'식객' 후속작 준비
허영만 화백
손수 車 몰고 텐트에서 자고
여수·순천 이어
전복 최대 생산지
보길도·노화도 찾아
'식객' 허영만 화백
보길도·노화도 취재 동행기
'식객' 후속작 준비
허영만 화백
손수 車 몰고 텐트에서 자고
여수·순천 이어
전복 최대 생산지
보길도·노화도 찾아

자주색 갈대꽃이 막 피기 시작한 지난 8일 노화도 선착장. 각종 캠핑 장비와 식재료로 자동차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까지 가득 채운 한 중년 신사가 나타났다. 보름 가까이 전남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있는 신사는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다. 《식객》 《타짜》 《각시탈》 등 여러 히트작을 남긴,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인 그가 노화도를 찾은 것은 단순히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 《식객》 후속작을 그리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내용을 작품 속에 담아낼 계획이다. 현장 취재를 위해 남도를 여행 중인 그와 지난 8~9일 이틀 동안 동행하며 후속 작품에 담길 내용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평소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렇게 짐을 싣고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며 “이번엔 여수, 순천을 거쳐 청산도, 노화도, 보길도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삼치회를 구멍이 숭숭 뚫린 ‘곱창 김’에 싸서 부추 양념장, 찬밥과 함께 먹으라는 박씨의 말에 허 화백은 ‘곱창 김은 다른 김과 달리 왜 이렇게 구멍이 많은지’, ‘애초에 종자 자체가 다른 김인지’ 등 깨알 질문을 쏟아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집 앞마당에 쳐놓은 1인용 텐트 안으로 들어가 랜턴 불빛 아래서 방금 전 먹은 삼치회 상차림을 노트에 그렸다.
그는 《식객》 후속작을 통해 전국 어디를 가도 있는 작은 백반집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미쉐린 가이드에 나올 법한 고급 식당, 귀한 음식이 아니라 서민이 매일 먹는 백반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밥과 국에 몇 가지 반찬이 함께 나오는 백반이야말로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집밥과 가장 비슷한 음식”이라는 게 그 이유다.
16년 전인 2002년 9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연재를 시작한 《식객》의 첫 번째 컷은 수북이 쌓여 있는 쌀의 모습이었다. 1화의 제목은 ‘어머니의 쌀’. 첫 대사는 비 오는 날 농민들이 행진하며 외친 “우리 쌀을 먹읍시다!”란 말이다. 취재 현장과 특강 자리 등에서 만난 농민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온 경험이 담겼다. 허 화백은 《식객》 후속작에선 농산물을 키우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룰 예정이다.

허 화백은 현지 식당들을 방문할 때 일부러 조금 느지막하게 점심 시간이 지나서 찾아간다. 사람들이 몰리는 식사 시간이 되면 혼자 일하는 게 보통인 주인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아무리 ‘천하의 허영만’이더라도 뭐 하나 물어볼 수 없어서다. 그는 이번 여행에서도 순천과 여수에서 괜찮은 백반집을 한 곳씩 발견했다고 말했다.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허 화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짐을 꾸렸다. 능숙한 솜씨였다. ‘밖에서 자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하자 “히말라야도 갔다 온 사람인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그는 다시 차에 올랐다. “이왕 왔으니까 앞으로 5일 정도는 더 남해안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보고, 먹겠다”며 떠났다.
그는 과거 언론에 《식객》을 취재할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식객을 그릴 때는 배우는 즐거움에 그리는 기쁨이 넘쳤어요. 무엇보다 식객 취재는 나갈 때마다 뿌듯했어요. 약속 없이 찾아가도 (식당 주인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왔어요. 식당 주인분이 ‘어찌 그리 우리 속내를 잘 아는지, 고마워서 눈물도 많이 흘렸어’라고 말하면서 손을 잡고 놓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그가 《식객》에 담길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전국을 누빈 것도 벌써 20년째다. 그 사이 그가 그린 만화는 수백만 부가 팔렸고 여러 편의 작품이 영화로 제작돼 흥행에도 성공했다. 20년 사이 그를 둘러싼 많은 것이 변했지만 발로 뛰며 취재하는 그의 직업 정신과 열정만큼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완도=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