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시장서 블록딜 '정공법'
오너일가·우호주주 배제
불필요한 오해 원천차단
전자지분 매각 '묘수' 나올까
물산서 2%정도 지분 사들여
최대주주 되는 방안 등 거론
"정답없는 문제 풀고있는 기분"
지주사법·보험업법·금산분리 등
첩첩산중 규제에 손발 다 묶여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20일 삼성물산 보유지분 3.98%(762만 주)를 매각함에 따라 삼성은 순환출자 규제 대상에서 ‘졸업’했다. 순환출자란 계열사 관계인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 B기업은 C기업에, C기업은 A기업에 다시 출자하는 원 모양의 지배구조를 말한다. 공정위는 순환출자에 대해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규정하고 이른 시일 안에 해소하라고 압박해왔다.
삼성은 이에 따라 지난 4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2.11%를 매각해 7개였던 순환출자 고리 중 3개를 풀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물산→전자→전기→물산 △물산→생명→전자→전기→물산 △물산→생명→화재→물산 △물산→생명→화재→전자→전기→물산 등으로 이어진 나머지 4개 고리도 해소했다.
삼성은 삼성물산 주식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나 우호 주주들에게 넘기지 않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지배회사란 점에서 오너 일가의 매입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삼성은 정공법을 택했다.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지분율(30.86%)을 보유한 데다 오너 일가가 추가 매입하면 ‘내부 거래’란 이유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 매각은 미정
삼성은 추가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와 ‘금산 분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묘수를 찾지 못해서다.
핵심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92%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정부는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연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 계획을 제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삼성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삼성생명 보유 지분을 다 팔면 오너 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19.78%에서 11%대로 떨어져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은 삼성생명이 들고 있는 지분 중 2% 정도를 삼성전자의 2대 주주(지분율 4.65%)인 삼성물산이 사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금융자본’인 삼성생명(매각 후 5.92%)에서 ‘산업자본’인 삼성물산(매입 후 6.65%)으로 바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제안한 해법이란 점에서 “삼성이 정부 요구에 성의를 보였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유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자산총액(46조원)의 50%를 넘으면 지주사로 강제전환되는 공정거래법 규정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40조원가량을 투입해 삼성전자 지분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불가능에 가깝다. 삼성물산이 지주사 전환을 피하면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지분율 43.4%) 등 다른 자회사 주식을 팔아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물산의 미래 먹거리란 점에서 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도 삼성 지배구조를 흔들 변수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대부분 매각해야 한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골자는 보험회사가 3% 이내로 보유할 수 있는 계열사 채권이나 주식가치를 현재 ‘취득원가’ 기준에서 ‘시장가치’로 바꾸는 것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꾸준히 오르면서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주식의 시장가치(약 24조원)는 취득원가(5000억원대)의 50배로 불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최대 8조원(작년 말 기준 생명 총자산 283조원의 3%)어치만 들고 있을 수 있다. 나머지 16조원은 매각해야 한다.
삼성 관계자는 “지주회사법 금산법 보험업법 등 이중, 삼중 규제에 갇혀 지배구조를 바꾸려야 바꿀 수도 없다”며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정영효/고재연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