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한양도성
지난 13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이화동 9의 70. ‘아다지오’라는 모임에서 보내온 모임 시간과 장소였다. 어렵사리 찾아가 보니 조그만 예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이다. 상호며 그림과 조각들이 예사롭지 않다. 이화동 벽화마을. 개뿔, 배오개, 이토, 노박 등 우리말 같은데 뜻을 잘 모르는 상호가 오손도손 무리를 지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개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신 열댓 명의 일행은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한양 도성 관람을 시작했다.

“먼저 서울 야경 한 번 구경하시죠.” 가이드의 말에 일제히 서울 시내가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전망대라지만 그저 동네의 한 귀퉁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가지는 그림엽서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여러분은 오늘 한양 도성 중 일부를 돌아보실 겁니다. 서울 성곽은 총 18㎞가 넘습니다. 이 중 일부는 멸실되고 꾸준히 복원한 결과 현재 70%가량 남아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도성을 쌓았는데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이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는 설명을 이어갔다. “사대문의 이름을 하나하나 대 보실까요? 동쪽에는 동대문인 흥인지문이 있고 남쪽에는 숭례문, 서쪽에는 돈의문이 있습니다. 이름마다 특별한 한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대문의 이름에는 유교의 중심 사상으로서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하나씩 들어 있다. 그런데 지와 신은 빠져 있다. 지와 신은 어느 이름에 들어 있을까. 가이드의 설명이 점점 흥미를 돋운다.

“지는 원래 북문 명칭에 들어가야 하지만 빠졌습니다. 북문의 원래 명칭은 숙청문(肅淸門)이었다가 후에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습니다. 북문이라 지(智)를 못 쓰고 꾀한다는 뜻의 정(靖)을 쓴 모양입니다. 그러면 신(信)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보신각(普信閣)에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지명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성곽을 돌아보니 서울이 새롭게 보였다. 그간 서양문화를 공부한답시고 그리스로, 로마로 돌아다닌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서울에 이런 유서 깊고 아름다운 성곽이 있는데 뭘 그리 찾아 헤맸단 말인가. 더구나 이번 행사는 한양도성의 영어 해설 스크립트를 만들어 주고 있는 주한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주관했다.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성곽 돌이 여러 가지 모양이었다. 아마도 여러 번 개축한 모양이다.

“이 성곽은 태조 때 축조되고 세종, 숙종, 순조 때 개축 공사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상당 부분이 훼손된 것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복원해왔습니다. 개축과 복원 때마다 사용한 돌의 크기가 달라 지금은 나이테의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희미하게 글씨가 남아 있는 돌이 간혹 보였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역시 의미가 있었다. 성곽 공사를 위해 전국에서 동원된 사람들은 구간별로 나뉘어 지역별로 공사에 투입됐다. 예를 들면 ‘홍산’이라는 글씨는 부여군 홍산면에서 온 일꾼들이 만든 구간이라는 뜻이라는 설명이었다. 지역 명칭을 남긴 것이 자신들의 공사를 기념하는 의미냐는 순진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매서웠다. “지역 명칭을 돌에 새긴 것은 훗날 그 구간 공사에 하자가 생기면 보수 공사를 할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서운 기록이지요. 공사실명제인 셈입니다.”

성곽을 거의 다 둘러볼 때쯤 가이드가 또 의미 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한양의 성곽은 적의 침략에 대한 방어용도로 만든 게 아니다. 그러기엔 성이 너무 넓어서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동대문을 통해 진격해 왔다. 동대문과 그 주변 성곽은 지대가 낮아 방어에 부적합했다.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했다. 그 다음엔 북쪽에서 청나라가 침공했다. 인조는 한양을 다시 버리고 강화도로 피난 갔다. 6·25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 가이드는 “우리 국민의 DNA에는 지도자가 국민을 버리는 데 대한 트라우마가 각인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날 한양도성 답사는 한양의 4소문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참여한 한양도성 답사에는 특별한 명칭이 있었다. 한양순성(巡城)놀이. 조선 시대 백성들이 한양도성을 돌면서 소원을 비는 것을 ‘순성놀이’라고 했다고 한다. 임금도 순성을 하며 백성들의 삶을 살폈다는데 한동안 그 맥이 끊어졌다가 2011년 다시 시작돼 이제는 큰 행사로 발전했다. 올해에는 다음달 13일 일주 코스로 18.6㎞, 반주 코스로는 10㎞를 순성한다. 순성놀이의 표어가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이다. 이날 답사 행사가 없었으면 한양도성도, 순성놀이도 전혀 모르고 살 뻔했다. 여러분은 한양도성 순성놀이 알고 계셨나요?

조근호 <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chogh5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