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통상전쟁이 다시 격화할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예정대로 관세폭탄을 퍼붓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으로의 부품 및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추가 관세 부과에 나서려는 데 대해 중국도 강력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복수의 중국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원재료와 장비, 부품 등의 수출을 규제하면 미국 제조업체의 부품·소재 공급망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당장 애플 아이폰 제조에 빨간불이 들어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애플은 아이폰 전량을 중국에서 조립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중국 경제전문매체인 차이신도 미국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반격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커지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재정부 장관을 지낸 러우지웨이(樓繼偉)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외사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특별포럼에서 “관세 보복과 함께 공급망의 핵심 요소인 중간재와 원자재, 장비, 부품 수출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미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러우 위원장은 “미국에 타격을 줄 제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미 정부가 관세 부과 목록에서 제외한 상품과 미 기업들이 전력을 다해 관세 대상에서 빼달라고 호소하는 제품이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핵심 중간재 등의 수출을 끊으면 미국이 대체재를 찾기까지 3~5년이 걸릴 것”이라며 “(미국이) 고통을 맛봐야 무역전쟁을 멈추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러우 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일각에서는 통상전쟁에 임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가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 정책 자문 역할을 하는 정협의 고위 간부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개 석상에서 나온 발언을 예사롭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이 강경 대치 태세를 취하면서 오는 27~2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협상도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중국은 당초 이번주 상무부 고위 관리를 미국으로 보내 류허 경제담당 부총리와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간 협상을 위한 정지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류 부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17일 2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 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지자 중국이 협상을 거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고위 당국자는 WSJ에 “우리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상대방과는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선 대(對)중국 추가 관세 부과를 놓고 강경론과 온건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WSJ는 “한편으로는 대화를 제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세 부과를 압박하는 것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분열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강동균/뉴욕=김현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