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29일 오후 4시55분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손자인 구본천 사장이 이끄는 LB 프라이빗에쿼티(PE)는 지난 5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지분 6.08%를 넷마블게임즈에 매각했다. 지난해 9월 벤처캐피털(VC)인 SV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던 지분 일부를 사들인 지 8개월 만이다. 그 사이 빅히트의 기업가치는 약 27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급등했고 189억원을 투자한 LB PE는 560억원을 회수했다. 연간 내부수익률(IRR)이 385%에 달하는 투자 ‘대박’이었다.

투자를 주도한 남동규 LB PE 대표는 “SV인베스트 같은 VC는 투자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수익률 관리를 위해 투자를 회수하려는 수요가 있다”며 “이때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VC와는 다소 다른 ‘세컨더리 펀드’가 VC의 회수를 도우면서 투자 기회도 얻는 ‘윈윈’ 거래가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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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10개 벤처 세컨더리 펀드 결성

다른 VC펀드나 사모펀드(PEF)가 보유한 기업 지분을 사들이는 세컨더리 펀드가 자본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운용사들의 투자 회수를 돕고 투자 기업의 경영 안정에도 도움을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다. 지분을 판 운용사들은 회수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에 재투자하면서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벤처업계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8개의 세컨더리 펀드가 생겨났다. 2700억원 규모다. TS인베스트먼트와 미래에셋벤처투자가 4월과 5월 각각 800억원, 150억원 규모로 조성한 펀드가 대표적이다. 올해 상반기 결성된 VC펀드 규모가 총 1조4146억원임을 감안하면 약 20%가 세컨더리 펀드인 셈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조성된 세컨더리 펀드가 13개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성장세다.

VC뿐 아니라 PEF 운용사도 세컨더리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LB PE, 대신PE 등 전문 세컨더리 펀드를 자처하고 나선 운용사도 있다. 대신PE는 최근 케이스톤파트너스와 함께 SK텔레콤 컨소시엄에 참여해 ADT캡스의 칼라일지분 3.15%를 사들이기도 했다.

남동규 대표는 “2010년부터 7년간 국내 PEF의 총투자 규모는 55조원에 달한 반면 같은 기간 회수 규모는 27조원에 불과했다”며 “PEF가 팔아야 하는 자산은 늘어나는데 기업의 투자 여력은 떨어져 세컨더리 PEF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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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이유로 국민연금은 올해 처음으로 세컨더리 PEF 운용사를 선정하기도 했다.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KB증권-스톤브릿지캐피탈을 선정해 2000억원씩 출자했다.

◆LP 지분 유동화 펀드 활성화 전망

펀드 출자자(LP)가 보유한 펀드 지분을 사들이는 세컨더리 펀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세컨더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투자 방식이다.

두산그룹 4세인 박진원 부회장이 이끄는 VC 네오플럭스는 지난해 하나금융투자가 보유하고 있던 ‘IMM 세컨더리 벤처펀드’의 지분을 약 51억원에 인수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약 40% 지분을 남겨 펀드의 초과수익을 계속 노리고, 회수한 자금은 IMM인베스트먼트가 새로 조성한 펀드에 재투자했다.

이 같은 펀드 지분 거래는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다. 해외에서는 운용사 동의만 얻으면 지분을 사고팔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출자자 전원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규제 완화 움직임이 있는 데다 시장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은 2016년부터 LP 지분거래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해왔다. 모태펀드에서 출자받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한국성장금융에서 출자받은 네오플럭스, 엔베스트 등이 3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성장금융은 올해부터 아예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