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가능했던 전속고발권 제도가 폐지되고 검찰이 직접 담합 행위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 칼을 뽑을 수 있게 된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사익편취 규제(일명 '일감 몰아주기') 기준과 순환출자 규제도 처벌이 강화돼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기업 발목잡기'로 비판받았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자산규모 10조원에서 GDP 연동으로 개편된다.
공정위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24일 입법예고했다.
◆전속고발권 38년 만에 폐지 위법성이 중대하고 소비자 피해가 큰 가격담합·입찰담합 등 '경성담합'에 대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해 공정위 고발 없이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속고발권은 정부 부처의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어 공정위에만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1980년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38년 만에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서 검찰이 소비자에게 큰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거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공정거래법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기업 입장에선 그동안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선 공정위 판단만 기다리면 됐지만 이제는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의 수사에 임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전속고발제 폐지로 자진신고가 위축되거나 중복조사에 따라 기업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리니언시' 제도 등을 활성화 하기로 했다.
리니언시란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를 제일 먼저 자진신고한 기업은 과징금 전액 면제, 두 번째 신고 기업은 50%를 감면해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검찰 역시 자진신고가 위축되지 않도록 추후 적절한 감경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공정위는 이와 별도로 '유통3법(가맹·유통·대리점)'과 표시광고법에서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 및 하도급법에서 기술유용에 한해 부분폐지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민사적 구제수단도 확충된다. 현재는 피해자가 불공정거래행위를 당해도 공정위에 신고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구제수단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피해구제의 필요성이 큰 불공정거래행위의 경우 피해자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위법행위의 중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도입키로 했다. 피해자가 공정위 신고나 처분을 기다리지 않고도 위법행위의 중지를 청구할 수 있어 실질적인 구제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담합 및 불공정거래행위의 손해배상소송에서 피해자의 손해액 입증을 지원하기 위해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했다. 이는 손해액 입증에 필요한 경우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법원이 자료 제출을 명할 수 있게 해 손해배상소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과징금 수준도 현실화 하기로 했다. 현행 과징금 부과수준이 법위반 억지효과를 내는 데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담합의 경우 10%→20%, 시장지배력남용 3%→6%, 불공정거래행위 2%→4%로 유형별 과징금 상한을 일률적으로 2배씩 올렸다.
◆지주회사 및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지주회사를 통한 과도한 지배력 확대를 억지하기 위해 새로 설립되거나 전환되는 지주사(기존 지주사가 자회사·손자회사를 신규편입하는 경우도 한함)에 한해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상향키로 했다.
이에 따라 상장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현행 20%에서 30%로, 비상장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40%에서 50%로 상향된다.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의 경우 기존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을 현행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에서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일원화하는 방안도 확정됐다. 예를 들어 총수 일가 지분이 29%인 계열사는 현재는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규제를 피하려면 9%포인트가 넘는 지분을 팔아야 한다.
이들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시켜 실효성도 높이기로 했다.
이럴 경우 현대글로비스와 삼성생명 등 대기업 24곳과 이들 회사가 지분을 절반 넘게 소유한 자회사 214곳이 감시망에 추가돼 규제 대상이 440여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보험사의 추가적 의결권 제한(단독 5% 규제)은 규제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현행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와 무관한 계열사 간 합병은 예외적 의결권 행사 사유에서 제외했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기준도 현행 자산규모 10조원에서 경제규모의 성장에 연동될 수 있도록 국내총생산(GDP)의 0.5%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개편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야 할 국내 중견기업이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재벌기업' 규제에 묶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만 기업들의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명목 GDP 0.5%가 10조원을 초과하는 해의 다음 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이 예상되는 기업집단의 경우 지정이 되기 전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 제한을 도입키로 했다. 단, 신규로 지정되는 기업집단에 한해서만 의결권 제한을 적용한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단,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15% 한도 내에서만 예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경우 공정거래법상 별도 규제를 받지 않아 세금혜택은 받으면서도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나 사익편취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법 시행 이후 2년 간은 현재와 같이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되 2년 경과 후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의결권 행사 비율을 축소토록 했다.
해외계열사 공시의무도 강화된다. 기업 총수에게 국내계열사에 직·간접 출자한 해외계열사의 주식소유 및 순환출자 현황과 총수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해외계열사 현황에 대한 공시의무를 새로 부과키로 했다.
◆벤처지주사 설립요건 대폭 완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가 실질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벤처지주회사 설립요건과 행위제한 규제를 대폭 완화키로 했다.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요건은 현행 20%를 유지하되 기존 지주회사가 벤처지주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 단계에서 설립하는 경우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특례를 적용키로 했다.
벤처지주회사를 자회사 단계에서 설립할 때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20%, 손자회사 단계에서 설립할 경우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50%를 지분보유 요건으로 한다.
또 비계열사 주식 취득 제한을 폐지해 자유로운 벤처기업 투자를 유도하기로 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현행 벤처지주회사의 자산총액 요건(5000억원)도 대폭 완화한다.
정보교환행위에 대한 담합 규율도 강화된다. 최근 담합 사례의 경우 가격에 대한 명시적 합의 없이 정보교환을 매개로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어 이를 규제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업자 간 외형상 일치가 존재하고 이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한 경우에는 사업자 간 합의가 있는 것으로 법률상 추정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가격·생산량 등의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되는 행위유형에 추가했다.
기업결합(M&A) 신고제도도 정비된다. 그동안 매출액이나 자산총액 규모는 작지만 성장잠재력이 큰 스타트업 등을 거액에 인수하더라도 기업결합신고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신고가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피취득회사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이 현행 신고기준(300억원)에 미달하더라도 인수가액이 큰 경우 기업결합신고를 하도록 했다.
공정위의 조사권한의 재량은 축소된다. 공정거래사건의 처분시효를 현행 최장 12년에서 7년으로 줄이되 담합사건의 경우 사건처리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현행 기준(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 사건조사 개시일로부터 5년)을 유지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이해 관계자, 관계 부처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법제처 심사, 차관·국무회의를 거쳐 개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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