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시진핑에게 '제3의 길'은 있나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달 중국 재정부를 공격했다. 인민은행의 시충 연구국장이 재정부가 은폐성 채무를 정부 부채로 넘기려 하고 재정 리스크를 금융 부문에 전가하려 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재정의 투명성도 없을뿐더러 정보 공개도 대충대충한다며 재정부를 비판했다. 재정부도 이에 맞서 인민은행이 지방채 대란 사태 공범이며 위안화의 국제화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공격했다. 정부 기관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공산당 정치 환경에선 있을 수 없는 내분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주에 끝난 중국 지도부 비밀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도 통상마찰을 일으킨 미국과 싸우자는 주전파와 주화파 간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마침 백신 제조업체 창춘창성이 제조한 가짜 DPT(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백신사태로 중국 국민의 대정부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 터다. 중국 어린이병원 화장실에 ‘공산당 전복’을 외치는 문구가 나붙고, 일부 시민은 소규모 시위에까지 나서고 있다고 한다.

관료내분·사회안전망 부실화

중국은 공산당이 이끌고 국가 관료들이 뒤를 받치는 나라다. 중국몽에서 나아가 ‘세계몽’을 꿈꿨지만 국내의 체제 모순적 문제들이 잇달아 표면화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900달러인 개발도상국이다. 왕이 외교부 장관도 국제회의에서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가라는 사실을 몇 차례 언급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싱가포르가 국가 발전 모델이라고 자주 말해왔지만 오히려 한국의 산업화 시기 발전 모델이었던 권위주의적 관료 체제와 비교된다는 전문가가 많다.

199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8720달러였다. 한국의 1993년은 중앙은행 독립 문제로 한국은행과 정부 간 마찰이 치열했던 때다. 반도체로 인해 한·미 간 통상 분쟁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그토록 골치아팠던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한국은 이후 국제화와 자본 자유화의 길을 걸어 199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자본 시장 개방에 발을 내디뎠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만나는 등 1993년부터 10년간 소득 1만달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시장 개방도는 세계 2~3위 수준이다.

자유 시장경제의 길 걸어야

지금 중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1993년의 한국을 연상케 한다. 중앙은행과 정부 간 분쟁이 일어나고 과도한 투자와 과잉 생산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 곪아 터진다. 사회 안전망의 부실도 드러난다. 체제 모순에 따른 부작용이 표면화되고 있는 게 가장 크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사막지대인 신장위구르 지역에 고속철도를 건설한다. 일대일로는 다른 개도국의 반발에 막혀 제대로 앞을 내딛지 못한다. 국제화와 자본자유화의 길을 걸을지는 의문이다.

중국 경제의 덩치가 매우 크다는 점이 문제다. 중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 2.5%에서 지난해 15%로 올랐다. 이 시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통상 마찰카드를 내밀었다. 트럼프의 진짜 목적은 대중 무역적자의 축소보다 국유기업과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국 경제의 구조적 전환으로 읽힌다. 중국에 실력 부족의 현실을 알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이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게리 베커 교수는 “제3의 길은 없다. 있다면 오른쪽(자유시장경제)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중국 경제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너무나 많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