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김지은 씨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이 법원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안 전 지사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간음·추행 때 위력행사 정황이 없다"면서 무죄로 판결했다.

안 전 지사와 검찰 측이 위력 관계에 의한 간음 등 혐의를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던 까닭에 재판부가 어떤 주장에 손을 들어줬는지 주목된다.
안희정 민주원 부부가 묵었던 상화원 _ 홈페이지
안희정 민주원 부부가 묵었던 상화원 _ 홈페이지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고소인인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그 근거 중 하나로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상화원 침실 사건'이었다.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는 지난달 13일 법정에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해 김씨와의 일화를 증언했다.

민 씨는 "중국 대사 부부를 상화원에서 1박 2일 접대했고 피해자 김씨가 1층, 2층에 우리 부부가 숙박했는데 잠을 자다가 새벽 네 시쯤 발치에 김씨가 서 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잠귀가 밝은 편인 민 씨가 나무 복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보니 김 씨가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발치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

민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실눈을 뜨고 보면서 '깨우러 왔나' 생각했는데 안 전 지사가 '지은아 왜그래'라고 부드럽게 말했다"면서 "새벽에 왔으면 화를 내야 하는데 그 말투에 화가 났다"고 증언했다.

민 씨에 다르면 김 씨는 이후 "아, 어"하고 말한 뒤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5분이었다고 주장했다.

민 씨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자 안 전 지사는 "(사과) 안했어?"라고 반문했고 하루가 지나고 김 씨는 "술을 깨려고 2층에 갔다가 제 방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갔다"고 사과했다.

민씨는 "김씨가 남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다 생각해 멀리하라고 말했다”며 “공적업무수행에 대해 내가 어찌할 수 없어 수개월간 불쾌함을 감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검찰 주장은 달랐다. 반대신문에서 검찰은 "김씨는 방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안 전 지사가 다른 여성을 만나 불상사가 생길까 봐 문 앞에서 쪼그리고 있다가 잠든 것이고, 방 안에서 인기척이 나자 놀라서 내려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상화원을 함께 방문했던 한 중국 여성이 안 전 지사에게 '새벽에 옥상에서 만나자'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고 안 전 지사의 휴대전화가 착신전환된 수행용 휴대전화로 이런 내용을 받아본 김씨가 안 전 지사를 보호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안 전 지사가 중국 여성과 야밤에 만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될 경우 한중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밀회를 막으려 했다는 것이 김씨와 검찰 측 주장이었다.

안 전 지사 측과 검찰의 주장을 볼 때 김씨가 안 전 지사 부부 숙소 문앞까지 간 것은 맞는데 이후 김씨가 부부의 방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얘기는 서로 상반됐던 것.

검찰과 안 전 지사 측 주장을 경청해 숙고한 재판부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민 여사 증언이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세부적인 내용에서 증언에 모순과 불명확한 점이 다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아가 설령 피해자의 진술대로라고 하더라도, 한중관계 악화를 우려해 밀회를 막고자 부부 객실 문 앞에 있었다는 것은 수행비서 업무와 관련한 피해자 종래 입장과 상반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당시 네티즌들 또한 "문자를 착신으로 받았다면 안 전 지사는 해당 내용을 볼 수 없었을텐데 굳이 방으로 찾아갔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문 밖에서 지키고 있는데 자고 있던 안 전 지사 부인이 소리를 듣고 깨는 것이 가능할까" 등의 의견으로 김씨 진술에 의구심을 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결과적으로 "X죽이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는다"던 부인의 증언 덕분에 '바람난 남편' 안 전 지사는 확실한 증거없는 재판에서 유죄혐의를 벗고 '성폭력범' 굴레를 벗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