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기선행지수가 15개월 연속 내리막을 타며 외환위기를 겪던 1999년 이후 최장 기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 기간 선행지수가 한 번도 상승하지 않고 떨어진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경기 하강 추세가 그만큼 뚜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2일 OECD에 따르면 6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전월보다 0.3포인트 내려간 99.22를 나타냈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6~9개월 뒤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 확장 국면, 미만이면 경기 하강 국면으로 해석된다. 국가별 주요 경제 지표를 가지고 산출한다. 한국은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제조업 재고순환지표, 장단기 금리 차, 수출입물가비율, 제조업 경기전망지수, 자본재 재고지수, 코스피지수 등 6개 지수를 가지고 구한다.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유로존 재정 위기 등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속화됐던 2011년에 급락세를 이어가며 그해 말 98.37까지 떨어진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수출시장 회복에 힘입어 2014년 10월 100을 넘어섰고 이후 대체로 100 이상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3월 100.98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서 15개월째 내리막을 타고 있다. 외환위기 여파와 닷컴 버블 붕괴 등으로 1999년 9월부터 2001년 4월까지 20개월 연속 하락한 이후 최장 기간이다.

지난해 이후 경기선행지수가 내리막을 탄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등 주요국 경기선행지수가 대부분 100을 밑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유독 부진한 편이다. OECD가 월별로 경기선행지수를 공개하는 38개 국가 중 한국보다 선행지수가 낮은 곳은 멕시코 체코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그리스 아일랜드 인도네시아 터키 등 8개국에 그쳤다. 아일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이 최근 자국 화폐가치 급락 때문에 금융불안이 가중되는 신흥국이다. 이들 외 국가들은 경기선행지수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15개월간 한국이 1.76포인트 떨어지는 동안 일본은 0.27포인트, 중국은 0.49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고 미국은 오히려 0.32포인트 높아졌다.

게다가 한국의 경기선행지수 하락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올 들어 하락폭만 따지면 터키에 이어 조사 대상 국가 중 두 번째로 가파르다. 지난해만 해도 월별 하락폭이 0.1포인트 이하였지만 올 1, 2월엔 0.1포인트를 웃돌았고 3월부터는 매달 0.2포인트 이상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매월 발표하는 ‘최근 경제 동향’을 통해 9개월째 “우리 경제는 회복 중”이라고 언급한 점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기선행지수 하락세가 20개월을 넘어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내 경기 선행지표들이 대부분 부진한 데다 심리 지표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올해 2~4월 3개월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5월 0.0으로 보합세를 나타냈지만 6월 다시 -0.2로 돌아섰다. 설비투자는 3월 이후 4개월 연속 전월 대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역시도 닷컴 버블이 꺼지던 시점인 2000년 9월 이후 18년 만의 최장 기간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침체가 역력한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최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0.1%포인트 낮췄지만 최근 경제 지표를 보면 이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