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委는 정부로부터 독립하고
기업 자율성 훼손하는 일 없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합병, 분할 등 구조조정이나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 등의 안건에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거의 틀림없이 안건이 부결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회사는 276개사, 투자규모는 131조1000억원이고, 주요 상장기업의 1대주주 또는 2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주식투자자금의 46%를 34개 자산운용사에 위탁해 운용한다. 국민연금은 이들 위탁운용사를 선정하거나 운용사 정기평가 때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여부, 이행 여부에 따라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고 지난 17일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이 경우 국민연금의 위탁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필수적인 것이 된다. 또 정기평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여부를 점수화해 차기 위탁 여부 또는 위탁규모 결정에 반영한다면, 자산운용사는 국민연금의 결정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사실상 강행규범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여부 및 방향을 사전에 공개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이후부터는 34개 위탁운용사는 물론 국내 220여 개 자산운용사도 국민연금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는 것으로 신고한 자산운용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하기 귀찮고 또 어찌할 바를 모를 때는 국민연금을 따라 해야 후환이 없다.
국민연금이 발표한 로드맵에 따르면 2020년까지는 지금도 하고 있는 주총에서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배당정책 개선 요구 외에 대표소송과 손해배상소송 수행, 횡령·배임·부당지원 행위·경영진 사익편취 행위·임원 보수한도 과다 건(件), 이사·사외이사·감사위원 등 선임 반대 등에도 관여할 계획이다. 이런 것들은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 뻔하다. 기업으로서는 국민연금의 투자가 축복이 아니라 악몽이 될 수 있다.
배당만 해도 그렇다. 작년 12월 결산법인 중 실질주주에게 지급된 총 배당금은 22조6798억원이고, 이 중 외국인 실질주주가 9조원 정도를 가져갔다. 기업이 장기 전략을 세우려면 ‘실탄’(사내 유보금)이 있어야 한다. 기관투자가들의 압력으로 매년 배당금 잔치를 벌인다면 재투자는 무슨 돈으로 하며,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은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가. 창조적 기업으로 알려진 아마존과 벅셔해서웨이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배당을 한 적이 없다.
기관들이 고객의 집사라면 투자 실패로 고객 재산이 감소했을 때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떻게 보상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제대로 된 집사가 아니겠는가. 서슬 퍼런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기구 외에 기관들까지 나서서 기업을 감시한다니 오지랖이 넓기도 하다. 투자한 기업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자금을 빼 철수하는 것이 그 기업에 대한 최대의 응징이 아니겠는가.
국민연금이 이제 와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철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첫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보건복지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결정을 사전에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위탁운용사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했다고 해서 가산점을 줘서는 안 되며, 그 이행 여부에 가산점을 줘서도 안 된다. 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 소송 등 소송행위와 이사,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등 경영에 개입하기보다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업과의 건전한 대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