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답보상태에 빠진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중재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미국 워싱턴DC로 보냈다. 정 실장은 다음 날 카운터파트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면담했다(사진).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쪽이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 실장이 문 대통령의 ‘메신저’로서 방미했다는 것을 시사했다. 정 실장의 워싱턴DC 방문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5월4일에 이어 77일 만이다.

정 실장이 이날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기자를 만나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선순환적으로, 또 가급적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매우 유익한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 한·미 양국의 공동 목표라는 점도 재확인했다”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해서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제기된 북한산 석탄의 국내 유입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미·북 비핵화 협상의 진척 상황을 공유하고 이후 협상 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싱가포르 국빈방문을 전후로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밝히는 등 양국 협상을 적극 중재할 의지를 내비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실장이 귀국 후 23일 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것”이라며 “향후 우리 측이 중재할 틈이 있지 않겠나”고 했다.

한·미 외교가에선 미·북 양측이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빅딜 프로세스’의 선후 관계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시점에서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중재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 실장이 볼턴 보좌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연내 종전 선언 및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핵심 의제로 거론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의 비핵화 답보상태가 북한의 ‘선차적 요소’로서의 종전 선언 요구를 둘러싼 미·북 간 이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우세한 만큼 이 부분에서부터 매듭을 풀어나가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