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낙하산 지키려고 공제회에 'SOS'… 투자업계 "이러려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하나" 반발
마켓인사이트 7월22일 오후 3시15분

한국전력공사가 ‘낙하산 인사’를 상임감사위원으로 앉히려다 국제 의결권 자문기관의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 산하 연기금과 공제회에 SOS를 보냈다. 한전은 “주주총회 참석을 독려하는 차원의 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낙하산 인사를 심는 데 공적기금을 동원하려 한다”는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전력은 오는 30일 전남 나주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 예정이다. 이정희 대한변호사협회 사법평가위원을 사내이사이자 상임감사위원으로 선임하기 위해서다. 이 위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실무위원(차관급)을 지냈다. 2017년 1월 초 출범한 광주지역 시민단체 네트워크인 포럼광주의 공동상임이사를 맡기도 했다. 포럼광주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모임’을 표방했다. 이 위원은 기업 경력이 없는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분류된다.

한국전력은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표가 예상돼 안건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공적기금을 설득하고 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찬성표를 행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부 부처 산하에 있는 연금이나 소관 부처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제회 모두 정부 입김이 직접 닿는 곳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기관투자가들의 독립적인 주주활동’이란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의 지원 요청을 받은 또 다른 공제회 고위관계자는 “한전의 대주주는 정부”라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본 취지를 무시한 채 관치 인사를 앉히기 위해 공적기금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스튜어드십 코드 전면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가 산하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에 기금을 동원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 입김 아래 있는 연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정책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이러려고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전면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상임감사위원 선임은 관련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부인했다.

한전 인사의 발목을 잡은 건 최대주주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 제정한 ‘3% 룰’이다. 현행 상법은 감사 선임 안건에 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주주총회를 통과하기 위해선 의결권 있는 지분 2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한전의 대주주인 산업은행(32.9%)과 정부(18.2%),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사장을 임명하는 국민연금(5.68%)의 실질 의결권은 3%로 한정된다. 나머지 43.22%를 합친 46.22%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1.55%의 찬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ISS 등 국제 의결권 자문사가 이 후보자 선임 안건에 내부 감사위원을 두는게 맞지 않다는 이견으로‘반대 의견’을 내면서 상황은 더 꼬였다. 지분 28.33%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한전은 삼성자산운용(0.46%), 기타 기관 및 개인 주주(14.43%) 등으로부터 8.55%(정부·산업은행·국민연금 의결권 3% 제외)의 찬성표를 모아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에 청와대가 개입한 사건에서 보듯 연기금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해 공적기금을 활용한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명분마저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

stewardship code.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 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투자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모범규준을 말한다.

김대훈/김익환 기자 dea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