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예술의 '아름다운 만남'… 메세나 경영, 꽃길만 걸어라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이 르네상스 문화를 이끌었고 그 유산으로 오늘날 후세대는 자국 문화에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난달 27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한국메세나협회 회장단을 초청해 식사를 하면서 “예술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창의성과 감수성은 기업의 경영 혁신과 건전한 조직문화 형성에도 큰 역할을 한다”며 “예술과 기업의 상생협력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을 비롯해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등 한국메세나협회 회장단 8명이 참석해 예술과 기업의 협업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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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원 기업 수 감소 우려

기업들이 앞장서 예술 지원과 문화 나눔을 실천하면서 한국 문화계의 토양은 풍성해졌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시행 등으로 기업의 지원 활동이 다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메세나협회의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한국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2025억8100만원으로 직전 연도 대비 12.2%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문화재단을 통한 지원 금액 증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기업의 예술지원 창구인 재단을 통한 지원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6년에는 전년 대비 130억원가량 늘었다. 장르별로는 문화예술 인프라 지원 금액이 총 지원 규모의 58.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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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97개 기업이 1463건의 사업을 지원했지만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8.4%, 5.3%가량 감소한 것이다. 작은 규모라도 문화예술 지원 관련 예산을 짜고 후원 활동을 실행해오던 기업들이 그 규모를 축소하거나 없애면서 메세나 활동도 주요 대기업 중심으로 쏠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치적 악재 영향으로 소액 기부를 하던 기업들이 기부를 철회하거나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기업의 문화 소비심리 위축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김영호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은 지난 4월 취임 간담회에서 “청탁금지법이 규정하는 선물 상한액이 5만원이라 기업들이 문화공헌 사업으로 공연 티켓을 사려고 해도 어려움이 있다”며 “청탁금지법의 취지는 좋지만 그것으로 인해 문화예술 지원이 위축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순수예술 공연은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어 표가 다 팔려도 적자인 구조인데 “풀린 표라도 다 팔릴 수 있도록 기업들이 티켓을 구매해 임직원이나 고객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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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환우 대상 문화활동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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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에서도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시각장애인 연주자의 활동을 돕기 위해 한빛예술단의 문화홀 순회 연주를 지원했다. 한빛예술단은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연주단이다. 한빛오케스트라, 한빛윈드오케스트라, 체임버오케스트라, 타악앙상블, 현악앙상블, 브라스앙상블, 체리티중창단, 팝밴드 블루오션 등 8개 팀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악보와 지휘를 볼 수 없어 전곡을 외워서 연주한다. 지휘 없이도 오케스트라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특별한 호흡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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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근당은 8년째 ‘오페라 희망 이야기’를 통해 공연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투병 중인 환자와 가족들에게 문화공연을 통한 위로와 휴식을 선사하기 위해 오페라와 뮤지컬, 영화에 삽입된 명곡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편곡한 어린이 맞춤형 오페라인 ‘키즈 오페라’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페라&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키즈오페라는 지난 5월18일 연세세브란스병원 공연을 시작으로 가천대 길병원, 칠곡 경북대병원, 대전 건양대 병원 등에서 20여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올해는 문화공연 관람 기회가 적은 도서산간 지역의 초등학생까지 관객의 범위를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방, 장르 등 메세나 영역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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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이 주목한 문화 소외층은 지방 청소년들이다. 한화는 천안과 청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한화청소년 오케스트라’를 2014년 시작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클래식 악기를 가르치고 연주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줘 현재 60여 명의 청소년이 연 70회가량의 개별 레슨 및 그룹 레슨을 받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음악뿐 아니라 마임으로 메세나의 영역을 확장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부터 춘천마임축제위원회와 결연을 맺고 춘천마임축제 후원과 함께 전국 현대백화점에서 마임공연, 클래식과 마임 현대무용의 콜라보 공연, 마임광대 서커스 공연, 버블과 마리오네트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3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열린 춘천마임축제에는 13개국 52개 팀 5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찾아 마임, 서커스, 무용, 파이어 쇼, 라이브 페인팅, 디제잉,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쳤다. 춘천마임축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의 후원과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축제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생계형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