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베르코 전망대에서 보면 초승달 모양 나자레 해변과 당근색 지붕 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수베르코 전망대에서 보면 초승달 모양 나자레 해변과 당근색 지붕 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여름이면 해변으로 간다. 수도 리스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대서양을 따라 멋진 해변이 펼쳐진다. 리스본 근교의 대표적인 휴양지는 카스카이스다. 제아무리 머릿속에 근심이 가득한 여행자라도 카스카이스의 구김살 없는 날씨 앞에선 무장해제되고 만다. 좀 더 한적한 바닷가에 머물고 싶다면 나자레가 제격이다. 나자레에선 거대한 파도에 맥박이 빨라지고, 장대한 초승달 모양 해안 풍경에 가슴이 차오른다. 어부가 갓 잡은 생선으로 요리한 푸짐한 음식은 덤이다.

왕가의 여름 궁이 있던 휴양지, 카스카이스

포르투갈 여왕도 ♥ 날린 '초승달 해변'으로 가자~
카스카이스는 리스본에서 훌쩍 반나절 여행으로 다녀오기 좋은 휴양지다. 리스본에서 기차로 40분이면 도착하는 데다 1년 중 260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를 뽐내는 까닭이다. 어딜 가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잔잔한 파도는 해변을 간질인다. 카스카이스의 매력은 바다와 도심이 공존한다는 데 있다. 노란색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걷다가 계단만 내려가면 남국의 해변이 펼쳐진다. 푸른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고 싶은 바다가 일렁인다.

누구보다 먼저 카스카이스의 매력을 알아본 이는 포르투갈 왕족이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 카를로스 1세는 이곳에 여름 궁전을 두었다. 당시 왕가의 별궁으로 쓰였던 카스카이스 해안의 노사 세노라 다 루즈(Nossa Senohora da Luz) 요새가 그 흔적이다.

이후 군대가 주둔하다가 카스카이스 시에서 매입해 보수 공사를 한 뒤 2011년 대중에 개방했다. 카를로스 1세의 영향으로 고깃배만 있던 카스카이스 항구는 해양 스포츠의 거점으로 발달했다. 지금은 길이 36m 이하의 보트 650척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항구를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요트가 낭만을 더한다.

그 시절 귀족들의 저택도 문화공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간다리냐 자작 소유의 집과 정원은 마레칼 카르모나 공원으로 변모했다. 해안을 따라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그림처럼 나 있다. 이 공원 안에는 미술 작품과 도자기 등을 전시한 콘데스 데 카스트로 기마랑이스 박물관도 있다. 본래 마누엘 데 카스트로 기마랑이스 공작의 저택으로, 그의 유언에 따라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카스카이스 라니나 해변 옆 노천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카스카이스 라니나 해변 옆 노천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여왕의 해변? 어부들의 해변?

카스카이스의 공원과 박물관도 멋지지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해변만 한 데가 없다. 카스카이스에는 페스카도레스, 레이나, 콘세이사오, 두케사 총 네 개의 해변이 있다. 그중 한가운데 위치한 페스카도레스 해변(Praira dos Pescadores)이 제일 넓다. 어부라는 뜻을 품은 페스카도레스 해변은 수심이 얕고 백사장이 넓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현지인들처럼 해변에 누워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몸을 맡기다 보면 마음의 주름이 쫙 펴지는 듯하다.

콘세이사오 해변과 두케사 해변은 나란히 이어진다. 주변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아서 투숙객으로 붐빈다. 요트나 윈드서핑을 하기에 좋고, 수심이 깊고 물이 맑아 다이빙도 즐길 수 있다. 그 어떤 곳보다 아담하고 호젓한 해변은 라니나(Praira da Raninha)다. 라니나는 9세기 아멜리아 여왕 전용 해변으로 쓰여 ‘여왕’이란 이름을 얻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예쁜 초승달 모양의 해변이 펼쳐진다. 해변을 따라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나자레의 해변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연인들.
나자레의 해변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연인들.
서퍼들이 많이 찾는 바닷가, 나자레

리스본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반이면 해안선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나자레(Nazar)에 닿는다. 카스카이스가 세련된 휴양지라면 나자레는 한적한 어촌 느낌이 짙다. 마침 나자레에 도착했을 땐 해가 뉘엿뉘엿 지는 중이었다. 여행가방을 부려 놓고 호텔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일몰이 하늘을 연한 자몽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해변으로 달려갔다. 붉은 태양이 하얀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파도 위에 아른거렸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석양도 근사했지만, 넓게 펼쳐졌다가 사라지는 파도가 매혹적이었다.

나자레의 명물은 거대한 파도다. 깊이 5000m의 해저 협곡이 높이 31m의 파도를 일으킨다. 2011년 11월 하와이 출신 서퍼 가렛 맥마라가 그 큰 파도를 타며 나자레를 세상에 알렸다. 파도에 도전하는 서퍼가 아니어도 나자레의 파도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특히 나자레는 해변이 아랫마을과 수베르코 절벽 위의 마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바다의 표정이 달라진다. 110m 절벽 위의 수베르코 전망대에서 보면 초승달 모양 해변이 그렇게 장대할 수가 없고, 해변을 거닐어 보면 또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나자레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전통 의상이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7겹 치마,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에 구두를 신고 거리를 오가는 할머니들은 나자레의 살아있는 명물이다.
노점에서 나자레 전통 의상을 입고 견과류를 파는 할머니.
노점에서 나자레 전통 의상을 입고 견과류를 파는 할머니.
푸니쿨라 타고 110m 절벽 위에 올라볼까

나자레 해변과 절벽 위를 잇는 푸니쿨라도 흥미롭다. 동네 사람들에겐 흔한 교통수단이지만, 여행자에겐 이색적인 탈거리다. 1889년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이자 ‘라울 메스니에르 드 퐁사르’가 만들었다. 당시엔 증기 푸니쿨라였지만, 1968년부터 전기 푸니쿨라로 진화했다. 지금의 푸니쿨라는 2002년에 업그레이드됐다. 예나 지금이나 42도 각도로 스르륵 절벽을 오르내리는데, 그 승차감이 놀이기구 뺨 칠 만큼 아찔하다. 절벽 위로 올라갈 땐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올 땐 산책 삼아 걸어와도 된다.

푸니쿨라에서 내리면 바로크식 첨탑이 돋보이는 노사 세뇨라 성당(Igreja de Nossa Senhora)이 시선을 끈다. 노사 세뇨라는 성모라는 뜻이다. 성당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노사 세뇨라 내부에는 8세기께 이스라엘의 도시 나자레에서 가져온 성모상이 있다. 주말에는 이곳에서 나자레 사람들의 결혼식도 자주 열린다.

절벽 끝에 있는 메모리아 소성당(Ermida da Memria)은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로 유명하다. 그 유래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182년 11월14일 안개 낀 이른 아침 사냥에 나선 귀족 푸아스 로피뇨가 맹렬히 사슴을 쫓고 있었다. 절벽에 다다른 순간 사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 어디선가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말을 세웠다. 낭떠러지 앞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푸아스 로피뇨는 그 자리에 ‘기억의 사원’이라는 뜻의 메모리아 소성당을 지었다. 풍문에 따르면 대항해시대의 영웅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도 인도 항해를 떠나기 전 성모 마리아의 기운을 얻기 위해 이곳을 다녀갔단다.

사실, 메모리아 소성당보다 시선을 뺏긴 곳은 바로 옆 수베르코 전망대였다. 그곳에 서자 초승달 모양의 나자레 해변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전망대 담장에 빌트인 가구처럼 달린 벤치에 걸터앉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눈앞에는 거대한 파도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해변을 쓰다듬는 풍경이 영화처럼 상영됐다. 마치 한 마리의 갈매기가 되어 하늘에서 굽어보는 듯했다.

생선구이에 해물밥, 문어밥까지

 카사 피레스 아 사르디나의 정어리구이 요리.
카사 피레스 아 사르디나의 정어리구이 요리.
수베르코 전망대에서 눈이 호강을 했다면, 해변과 골목에 포진한 레스토랑에선 입이 호강할 차례다. 윗마을 아랫마을 할 것 없이 식당마다 정어리 굽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어딜 가나 어부들이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이 식탁에 오르고, 와인이 곁들여진다.

문밖까지 진동하는 생선 굽는 냄새에 이끌려 간 곳은 카사 피레스 아 사르디나(Casa Pires a Sardinha)였다. 나자레에서 정어리가 맛있기로 유명한 생선구이 전문점이다. 안은 손님들로 왁자지껄, 밖에선 요리사가 쉴 새 없이 석쇠에 생선을 구워 나른다. 정어리 구이 1인분을 시켰더니 정어리 5마리에 흰 쌀, 감자, 샐러드가 식탁에 놓였다. 그런데 껍질에 소금이 수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포르투갈 사람들은 손으로 정어리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게 아닌가. 소금을 솔솔 뿌려야 즙이 빠져나오지 않아 살이 단단해지고 풍미가 좋아진단다. 껍질을 스르륵 걷어 내고 속살만 맛봤다.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여기에 포르투갈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아로즈 드 마리스쿠(Arroz de Marisco)까지 맛보면 금상첨화다. 일명 해물 밥으로 통하는 이 음식은 토마토 퓨레에 각종 해산물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요리다. 주재료에 따라 문어밥, 새우밥 등으로 변주가 다양해진다. 카사 피레스 아 사르디나에서 큼직한 아귀와 새우를 듬뿍 넣은 아로즈 탐보릴(Arroz Tamboril)을 선택하면 식사 내내 입꼬리가 올라갈 것이다.

카스카이스=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여행메모

카스카이스와 나자레는 리스본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쉽다. 둘 다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먼저 카스카이스는 리스본의 카이스 두 소드레 역에서 기차를 타면 40분 만에 도착한다. 나자레는 리스본의 세테 리우(Sete Rio) 버스터미널에서 레데(Rede) 직행 버스를 타면 약 1시간50분 걸린다. 버스는 하루 평균 6~8회 오가는데, 주말에는 운행 간격이 길어지니 미리 확인하는 편이 좋다. 나자레에 내려서는 버스 정류장에서 몇 블록만 걸어가면 해변이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