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일본 축구 대표팀 ‘에이스’ 혼다 게이스케가 팀의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대뜸 사과부터 했다. 일본은 29일(한국시간) 러시아 볼고그라드 아레나에서 끝난 대회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폴란드에 0-1로 패해 1승1무1패(승점 4)로 조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일본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같은 시간 열린 콜롬비아-세네갈전에서 세네갈이 0-1로 패해 일본과 승점과 골득실, 다득점, (해당 팀 간) 승자승까지 따졌지만 우위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앞선 일본이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이날 후반 14분 폴란드에 실점했을 때만 해도 탈락 위기에 몰렸다. 일본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 뛰었다. 그러나 얼마 뒤 콜롬비아의 득점 소식이 일본팀에 전해졌다. F조 실시간 순위에서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옐로카드 4장으로 세네갈(6장)보다 앞선 일본이 2위로 올라간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 세네갈이 동점골을 넣으면 일본이 다시 3위로 밀릴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일본은 후반 30여 분부터 공을 돌렸다. 15분간 ‘패스 훈련’이 이어졌다. 일본은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패스 훈련을 이어갔다. 16강 탈락이 확정된 폴란드도 이미 승리가 확정된 경기에서 굳이 달려들지 않았다. 세네갈이 그대로 패했고 일본의 모험은 성공으로 끝났다.

경기 후 축구 전문가들은 일본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세네갈이 동점골을 넣어 일본을 떨어뜨려야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페어플레이와 거리가 먼 경기를 하고도 페어플레이 점수로 올라간 일본을 두고 영국 BBC 해설을 맡은 마이클 오닐 북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은 “다른 경기 결과에 운명을 맡기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을 좋아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국 ‘더 선’은 “아키라 니시노 (일본) 감독은 할복(hara kira)을 고려해야 한다”는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경기 후 “16강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이렇게 한 것은 대단한 일이고 니시노 감독의 선수 기용은 담력이 있었다”고 자화자찬했다.

경기 과정과 관계없이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이번 대회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팀이 됐다. 반면 아프리카 팀은 세네갈이 16강 문턱에서 떨어지면서 1986년 16강 토너먼트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전멸하는 수모를 겪었다. 유럽은 10개 팀, 남미는 5개 팀이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내달 3일 오전 3시 ‘우승후보’ 벨기에와 8강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 단판 승부인 토너먼트는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30일 오후 11시 킥오프로 시작한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