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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로 나온 '넷페미'… "행동해야 바뀐다" vs "갈등만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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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팀 리포트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나도 피해자 될 수 있다" 공포
    생존 차원으로의 '페미니즘' 확산

    온라인서 태동한 '2세대 페미'
    1세대 운동권 페미, 이론에 무게
    2세대는 더 적극적인 행동 촉구
    성범죄·몰카 '솜방망이 처벌' 규탄

    운동 거세질수록 반발도 커져
    남초 커뮤니티, 페미 작가 '보이콧'
    어린 남성일수록 더 노골적 반감

    한국식 가부장제가 만든 굴레
    남성도 여성의 호소에 '연대'해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성차별ㆍ성폭력 4차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해 여성 추모와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성차별ㆍ성폭력 4차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해 여성 추모와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서울시장 후보자의 벽보가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31일 이후 27건이나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국에서 발생한 선거벽보 훼손 63건의 약 40%가 이 후보의 벽보다. 포스터 사진 속 후보자가 비스듬한 자세와 다소 거만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 훼손의 이유로 꼽힌다. 노동·인권전문으로 유명한 박훈 변호사는 포스터를 보고 “1920년대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삘 나는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져서 나도 찢어버리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수난을 당하는 포스터 속 주인공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자처하고 나선 신지예 녹색당 후보다.

    페미니즘은 이처럼 요즘 우리 사회를 달구는 뜨거운 이슈다. 당당하게 ‘페미니스트’임을 밝힌 사람이 선거에 나올 정도가 됐지만, 법 위반을 감수하고서라도 벽보를 찢는 이들이 있을 만큼 반감도 공존한다. 열렬한 지지와 반대를 동시에 마주한 ‘새로운 페미니즘’을 모르고서는 오늘 한국의 사회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넷페미 탄생…“행동하는 여자가 이긴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역에 1만여 명의 여성이 모였다.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추모 집회’였다. 현장 곳곳에선 “우리는 강남역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흔하디 흔한 살인사건은 어쩌다가 강렬한 원체험으로 바뀌었을까.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 씨는 “강남역 사건으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피상적인 학문이었던 페미니즘을 생존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면서 폭발력 있는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범인이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6명을 보낸 뒤 나타난 여성을 살해한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자라서 당한 것’과 ‘단순 묻지마 살인’의 차이를 느끼고, 피해자가 ‘강남역 화장실녀’ 등으로 호명되는 것을 보면서 같은 사회구성원이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충격이 젊은 여성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새로운 바람은 온라인에서 먼저 태동했다. 10여 년 전부터 남초 커뮤니티에서 주로 유통되던 ‘김치녀·된장녀’, ‘상폐녀’(나이가 많은 여자를 상장폐지에 빗댄 표현), ‘맘충’ 등 여성비하 표현을 이른바 ‘미러링’(역지사지)으로 되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조신한 남자는 밤늦게 다니지 않는다”,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의 패러디가 쏟아져나왔다. 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과격해졌다. 폭력성을 지적하면 “우리가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말할 때 사회가 반응했느냐”고 받아쳤다.

    1세대 운동권 페미니스트들이 학문과 이론 정립에 무게를 뒀다면 온라인에서 태동한 페미니스트(넷페미)들은 행동을 미덕으로 삼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약한 성범죄 처벌, 몰래카메라 범죄, 생활 속 성차별 사례 등을 모은 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2일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의 몸에 이중잣대를 대지 말라”며 상의탈의 시위를 벌인 ‘불꽃페미액션’ 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봐서야” 반발도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이른바 ‘덕질’(취미생활)의 대상이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제대로 공부해야 불합리를 지적하고 비판에 반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대학엔 각종 여성주의 동아리가 신설됐고, 중·고등학교에서도 페미니즘 동아리가 유행이다. 페미니즘 세미나에 가입해 한 달째 공부 중인 대학원생 정다영 씨(29)는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이론이 있는데 나에게 맞는 것을 찾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며 “여자뿐 아니라 남자 참가자도 꽤 된다”고 귀띔했다.

    행동이 세질수록 반발(백래시)도 만만찮다. 지난 6일 연세대는 총여학생회 개편 여부를 묻는 투표를 하기로 했다. 총여학생회가 페미니스트 강사 은하선 씨의 강연을 추진하면서 학내 기독교동아리의 반발을 산 것이 계기가 됐지만, 실상은 페미니즘에 대한 오래된 반발이 폭발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스트로 분류한 여자 연예인 리스트를 작성한 뒤 그들의 SNS를 집단적으로 공격한다.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른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나 웹툰작가들은 보이콧의 희생양이 된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고, 책임(병역의 의무 등)은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요구하는 무임승차로 치부된다. 직장인 박모씨(32)는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모는 듯한 요즘 페미니즘의 표현은 거북하다”고 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반감은 좀 더 노골적이다. 온라인에서 접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일상적인 놀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이모군(14)은 “학교에 페미니즘 동아리가 생기자 남자친구들끼리 ‘안티페미 동아리’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며 “이미 여성상위시대에 페미니즘 주장은 이기적”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워마드’의 등장도 반발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성소수자 등을 비하하거나 여성 몰카에 대항해 남성 몰카를 공유하는 워마드 식 행동이 대중의 거부감을 부른다는 지적이다.

    ◆페미니즘은 피할 수 없는 이슈

    넷페미가 주도하는 ‘뉴웨이브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관심 밖이었던 성평등 이슈를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로 불러냈다는 공이 있다. 갈등이 생길지언정 이슈를 생산해 논쟁과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최대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폐쇄나 미투(나도 말한다) 운동 등 실질적인 성과도 거뒀다.

    다만 너무 과열된 탓에 차분한 논의를 차단하는 역기능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여성학 교수들 사이에서는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밝히길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어떤 식으로 말해도 비난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단일한 이론이 아니라 생태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운동이자 생활양식인데, 오로지 찬반으로 나눠 ‘전투’에 임하는 풍토가 조성됐다는 얘기다.

    공격적인 행동이나 언어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활동가들사이에서도 운동의 방식은 고민과 논의의 대상이다.

    페미니즘이 강력한 정치성을 갖게 된 이상 더는 회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남성은 여성이 시작한 싸움과 호소를 연대의 요청으로 받아들이고 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한국식 가부장제가 만든 질곡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남성 역시 페미니즘 운동의 또 다른 당사자”라고 강조했다.

    ■ 맨스플레인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결합한 단어로, 어느 분야에 대해 여성은 잘 모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가진 남성이 설명하려고 하는 행위. 2010년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

    ■ 백래시

    주로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나타나는 반발.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백인 차별주의자들의 반발을 ‘화이트 백래시’라고 불렀다. 1980년대 미국 내 반(反)페미니즘 공격도 백래시의 일종.

    ■ 가스라이팅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로, 가해자의 가스라이팅이 지속되면 피해자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자존감을 상실함. 위계에 의한 성폭력, 데이트 폭력 등이 대표적인 사례.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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