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제헌국회 개원 70주년을 맞는다. 그간 우리 국회는 얼마나 발전했고, 정당정치는 뿌리를 잘 내렸는가. 국민의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다. 정당은 지역기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비(非)민주적인 당내 계파정치와 패권주의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적지 않은 정당이 특정 인물 중심의 선거 승리를 위해 창당되는 ‘1회용’에 그쳐 온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제헌국회 이후 지금까지 등장한 정당은 210여 개(국회의원 배출 정당 기준)에 달한다. 정당 평균 수명은 2년6개월로 의원 임기(4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한 정당은 4개뿐이다. 150년 이상 당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 노동당 및 보수당과 대비된다.
어제 2년간의 임기를 마친 정세균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쓴소리는 우리 국회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정 의장은 “70년 동안 형성된 국회 관행과 문화는 국민 눈에 맞지 않는다”며 “(의원은)입법활동이 1순위여야 하는데, 선후가 바뀌어 지역구가 1순위, 정당 2순위, 입법활동이 3순위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매몰돼 본연의 의정활동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탄식이다. 실제 국회의원회관은 금요일만 되면 텅텅 비다시피 한다. 의원들이 주말을 지역구에서 보내기 위해 떠나기 때문이다. 평일에도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느라 수시로 자리를 비운다. 의원실마다 지역구 전담 보좌진 2~3명을 두는 마당에 지난해 8급 비서를 대놓고 ‘지역구 관리용’으로 할당해 논란을 빚기까지 했다.
이런 식이니 국회 본회의와 대정부 질문이 열리는 날 의결정족수를 채우는 일조차 쉽지 않다. 정족수가 모자라 안건을 처리 못 한 사례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활동 때문에 본회의를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열지 못한다. 한꺼번에 적게는 수십 건, 많게는 100여 건의 안건을 무더기 처리하는 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법안 조문을 다 읽고 찬성·반대 버튼을 누르는 의원이 얼마나 될까 싶다. “국회의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자”는 국민청원이 밀려든 배경이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나라의 국력은 놀랄 만큼 성장했고, 국민의식도 많이 성숙했다. 그러나 정치는 여전히 ‘삼류’라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20대 국회 후반기는 ‘일류 정치’로 가는 기반이라도 닦기를 기대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