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경 신춘문예 장편 부문에 당선된 《애주가의 결심》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은모든 씨.
2018 한경 신춘문예 장편 부문에 당선된 《애주가의 결심》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은모든 씨.
나무 그늘 아래서 마시는 인디안페일에일(IPA) 맥주, 멜론 위에 듬뿍 끼얹은 허니 위스키,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손끝을 녹이며 마시는 따끈한 청주, 시원한 막걸리…. 온갖 술의 이름이 끝도 없이 나온다.

‘2018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은모든 씨(37)의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기승전~술’ 이야기다.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면 으레 떠오르는 ‘무거운 주제’ ‘엄숙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시종일관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문장으로 애주가들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고달픈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서울 망원동의 다양한 술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술친구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어느새 으스름한 밤 망원동 한 선술집에 그들과 함께 앉아 청주에 젖어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막걸리 세 병이 본인 주량이라는 은 작가는 28일 “워낙 술을 좋아해 술 자체를 소재로 꼭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며 “술을 향한 순수한 애정의 발로”라며 웃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타공인 애주가이자 여태껏 한 번도 필름이 끊겨본 적 없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주희. 청운의 꿈을 안고 푸드트럭을 차렸지만 크게 망한 그는 이제 그토록 좋아하는 술을 마실 돈도, 일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다. 망연자실한 주희에게 사촌언니 우경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자신이 거주하는 망원동의 복층 원룸에 함께 살면서 싱크대 한 칸을 꽉 채운 술도 공짜로 주겠다고 제안한 것. 대신 자신은 금주하겠다고 선언한다. 망원동으로 이사 온 주희는 배우고 싶은 손맛을 선보인 전통주점에 주말 알바를 구해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한동네에 사는 술친구 ‘배짱’과 망원동 일대를 누비며 갖가지 술에 젖어든다.

그의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2018년 한국을 살아가는 보통 젊은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때 꿈이 있었지만 지금은 각박한 현실에 찌든 필부(匹夫)들.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끝내 실패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는 처음부터 회사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것 같다”며 자조하고, “더 이상 악화될 일도 없겠지만 딱히 앞으로 나아질 것도 없는 하루하루를 반복하다 늙어가는 것이냐”며 인생의 허무함을 두려워한다.

“서른이 넘어가니 직종 불문하고 주변 친구들이 제일 많이 토로하는 얘기가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1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는 거였어요. 일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한국의 경직된 노동 및 근무형태 때문에 쉽게 일을 벌이지 못하더라고요. 그들을 보면서 캐릭터들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우경은 간절한 마음으로 금주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예전 술친구였던 ‘예정’에 관한 얘기를 시작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는 옛 술친구 예정이 사라지면서 그토록 좋아했던 술 자체보다 같이 술 마시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에 공감을 건네고 위무하는 시간의 힘을 느낀다. 술잔이 오고갈 때의 시간과 웃음, 공감의 소중함을 은 작가는 강조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지겹기도 하고 지루한 이 시간들을 본인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이 소설은 지난 3월26일~4월9일 카카오페이지에 사전 연재돼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46회로 나뉘어 연재되는 동안 누적 구독자 수는 3만6000명을 기록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