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 자정에 NSC 소집 >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 발표 직후인 25일 0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을 소집,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엔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부터 시계방향),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청와대 제공
< 靑, 자정에 NSC 소집 >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 발표 직후인 25일 0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을 소집,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엔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부터 시계방향),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임종석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청와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선언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제동이 걸렸다.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견인하기 위한 1박4일 일정의 ‘원포인트’ 한·미 정상회담을 끝낸 직후여서 청와대는 더욱 체면을 구겼다. 미·북 정상회담 성공 확률을 99.9%로 장담한 것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회담 취소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트럼프식 화법’으로 오판했던 안이한 상황 인식도 도마에 올랐다.

◆말로만 한·미 동맹…양국 균열 재연되나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이번 일로 한·미 동맹과 비핵화 협상 공조의 균열이 표면화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충분한 의견 조율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회담 직후 하루도 채 안 돼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결정했고 이 같은 중대 결정을 한국은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청와대는 백악관이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알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홈페이지에 올리기 직전에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전달받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상의가 아니라 통보라는 점에서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삼각 파트너’의 당사자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회담 취소 결정을 한국 등 동맹국에 미리 알렸는지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그는 “우리가 누구(어떤 국가)에게 통보했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며 “백악관이 적절한 시점에 이야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회담 취소 사실을 한국이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한 질문에는 “미국과 한국은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만 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기자회견 배경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아니라 미 육·해·공군기와 해병대기만 배치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외교관례상 정상회담에는 양국 국기가 배치되는 게 정상인 것에 비춰 외교상 결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통역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해 결례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우려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저의 역할은 중재를 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북·미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 미국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답변은 통역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을 들을 필요가 없겠다. 왜냐하면 전에 들었던 내용일 게 확실하니까”라고 말한 뒤 웃음을 지었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청와대 취재단이 정리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통역이 필요 없겠다. 왜냐하면 좋은 말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번역됐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전 예정에 없던 돌발 기자회견을 34분간 하면서 실제 회담 시간은 당초 목표한 30분에 못 미치는 21분으로 줄어들었다. 당초 양국 정상은 모두발언을 한 뒤 배석자 없는 단독 회담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취재진에 질문 기회를 줬고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정상회담 전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 기자회견 역시 외교 결례 논란으로 이어졌다.

◆코너에 몰린 ‘한반도 운전자론’

기정사실처럼 낙관했던 미·북 정상회담이 틀어지면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궁지에 내몰렸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 공간을 넓히려는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도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 미·북 정상회담 성공의 가늠자가 될 ‘비핵화 방법론’을 둘러싼 양국 당국자의 설전을 방치했거나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은 것이 불씨를 키웠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지난 24일 밤늦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을 긴급 소집해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을 앞두고 양국 실무선에서 ‘기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 일을 틀어지게 한 빌미가 됐다”며 “상황이 어려운 만큼 (북·미) 두 정상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긴밀하게 대화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공통의 이해관계가 여전하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은 NSC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역사적 과제”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나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앞세운 지금까지의 ‘맨투맨’식 상황 관리보다는 양국 정상의 직접 소통을 중개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조만간 한·미 정상회담의 경과를 설명하고, 미·북 정상회담 재개를 논의하기 위해 김정은과 핫라인 통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성태 기자/워싱턴=박수진 특파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