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미·북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24일(현지시간)에는 “적절한 때가 아니다”며 전격 취소를 발표했지만 불과 하루 뒤인 25일에는 “(예정대로) 다음달 12일이 될 수도 있다”고 뒤집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물밑 조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른 시일 내에 접점을 찾아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달 12일 예정대로 열릴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도 회담 재개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경제성장 관련 법안 서명식에서 한 발언이 그의 의중을 보여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만약 김정은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에 참여하길 선택한다면 기다리겠다”며 “김정은이 궁극적으로 자신과, 무엇보다 엄청나게 불필요한 고통을 받는 국민을 위해 옳은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했다. AFP통신은 이날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기사를 통해 “대화 테이블이 완전히 치워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5일 구체적인 대화의 경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북한과 협의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건은 미·북 간 실무대화가 비핵화 방식과 속도를 둘러싼 이견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접근’ 사이에서 적절한 수준의 타협이 ‘데드라인’ 이전에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평택대 남북한통일문제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통해 “미·북 정상회담이 지연된 것이지 기회를 잃은 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신속하게 부드러운 톤으로 대응했고 미국도 대화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다만 당초 일정보다는 연기돼 7월 이후에 양국이 만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확약받고 당초 예정대로 6월12일에 회담을 하겠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화염과 분노’ 시절로 돌아갈 수도

미·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표면적인 이유는 참모들 간 난타전이다. ‘리비아식 모델’을 두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벌인 설전에 더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에 대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비난이 이어졌다. 최 부상이 펜스 부통령에 대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원색적인 표현을 쓴 게 기름을 부었다. 백악관 관계자가 24일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 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벌이던 ‘말폭탄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일 김정은이 또다시 미국을 향해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버튼을 누르는 식의 ‘도발 카드’를 꺼내든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쏟아내면서 일촉즉발의 무력충돌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이날 “회담 취소로 지난해 대결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 측 협상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갈루치는 “회담 취소로 세계가 덜 안전해졌다”며 “다시 2017년 상태로 돌아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리사 콜린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도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까지 감행하면 우리는 6개월 전 목격한 긴장 고조의 악순환을 다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과 북한이 CVID에 대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양국의 여러 채널을 가동해 하루빨리 강 대 강의 대결구도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